글로벌 경쟁이 가속화하면서 국내외 대기업간 전략적 제휴가 봇물을 이루고 있지만 재벌 서열 1∼2위를 다투는 삼성그룹과 LG그룹은 예외다.
특히 차세대 주력산업인 액정표시장치(LCD), 플라스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등 첨단 전자분야에 있어서는 서로 상대방 제품에 대한 ‘불매원칙’을 고수하고 있을 만큼 싸늘한 공기가 맴돌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대만의 전자업체들이 업체간 공동대응을 통해 시장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이들과 피를 말리는 주도권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삼성-LG의 공조가 절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삼성 ‘반도체’, LG ‘화학’ 서로 구매 안해=LG전자에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다. LG전자 사업장 안에 삼성마크가 붙은 것은 단 1개도 없다.
반면, 삼성전자는 LG화학의 각종 전기전자 소재를 일절 구매하지 않는다. LG화학의 LCD용 편광판, PDP 형광체, PDP필터, 프로젝션 스크린 등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제품들로 정평이 나 있지만 삼성은 이들 제품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대신 일본의 히타치, 신일철화학, 도레이 등과 삼성코닝, 제일모직 등 계열사로부터 조달한다. 이밖에 삼성SDI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LG마이크론이 생산하는 PDP 가공재료 섀도우 마스크와 포토마스크를 사용하지 않고 수입한다.
◇첨예한 자존심 대결=두 그룹이 모든 부문에 걸쳐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아니다.
LG필립스디스플레이와 삼성SDI가 첨단 브라운관 공동개발에 합의한 것을 비롯해 백색가전 공동판매장을 마련하는 등의 협력사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상대그룹의 주력산업에 대해서는 여지없이 날카로운 견제구를 던진다. 삼성의 반도체 부문, LG의 화학사업은 자타가 공인하는 양사를 대표하는 주력사업으로 두 그룹은 상대방의 주력제품에 대해서는 철저히 불매원칙을 지키고 있다.
LG는 현대와의 반도체 빅딜 이후 D램 및 플래시메모리 등 반도체 제품을 아웃소싱(외부구매)하다 보니 제조단가가 상승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때문에 공급업체 다변화를 통해 부품조달 비용을 낮춰야 하는 필요성이 높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삼성 반도체는 납품 검토대상이 아니다”라는 게 LG관계자의 설명이다.
두 그룹의 이같은 납품관행은 수십년 동안 경쟁구도를 이어온 내력에서 비롯되고 있다. 흑백TV 개발에서부터 세계 주요 도시에서의 옥외 광고판 설치전, 디지털TV 사이즈 경쟁 등 삼성-LG의 사사(社史)는 양사간 대결의 역사로 점철돼 있다.
◇동반자 의식 높여야=양대 그룹의 경쟁구도는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최근의 디스플레이 분야에 있어서 두 기업간 신경전은 소모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해외업체들이 합종연횡을 통해 ‘타도 한국’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업체들이 힘을 모아도 어려울 마당에 지루한 자존심 대결로 힘을 낭비해서는 안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일본의 히타치와 마쓰시타, 도시바는 공동 출자를 통해 오는 2006년까지 일본 치바현에 6세대 LCD 패널공장을 짓기로 최근 합의했다.
반도체 업계에도 제휴바람이 거세다. 세계 4위의 메모리 업체인 독일 인피니온은 지난 6월 말 대만의 난야테크놀로지와 함께 27억달러(약 3조2000억원) 이상을 투자, 세계 최대 규모의 300㎜ 웨이퍼 공장을 짓기로 결정한 데 이어, 또 다른 대만업체인 윈본드와도 손을 잡고 D램 생산을 늘릴 계획이다.
유화업계의 한 관계자는 “LG화학의 플라스틱 가공기술과 물성분석 능력이 뛰어나 시트류는 일본제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이라며 “만약 삼성이 LG화학 제품을 사용할 경우 비용절감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LCD 부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과 LG가 LCD 5세대 표준규격에 합의했더라면 우리나라의 LCD경쟁력을 지금보다 월등히 높아졌을 것”이라며 “삼성-LG가 공조해야 일본, 대만의 추격을 뿌리치고 한국이 1등을 굳힐 수 있다”고 말했다.
/ namu@fnnews.com 홍순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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