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6시 서울 합정동 한국복지재단 별관. 20여년 전에 입양시킨 딸과의 상봉을 기다리고 있던 김모씨(57)의 입술은 떨렸다. 네덜란드로 입양된 딸, 시라(24·네덜란드명 시라 미웁세)가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 김씨는 더욱 말이 없어졌다.
“1주일 전부터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었습니다. 지금 너무 떨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김씨의 입술은 바짝 말랐고, 눈은 설렘과 긴장으로 뒤섞여 붉게 충혈됐다. 굵은 마디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시라가 태어난 건 지난 80년. 김씨는 형의 사업을 돕기 위해 고향인 충남을 떠나 부산으로 이사했다. 결혼을 하고 시라를 낳으면서 자리를 잡아갔다. 그러나 사업이 어려워지자 부인은 이혼을 요구했고 시라는 얼마 후 네덜란드로 입양됐다. 그때가 82년.
“원망을 받아도 마땅합니다. 그저 딸이 잘 자라주었는지 몹시 궁금하기만 할 뿐입니다.”
김씨는 담담했다. 딸이 울며 자신을 원망해도 “딱히 할 말은 없는 처지”라는 점을 김씨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시라와 그의 남자친구(26·릭 판 데 베르프·의사)가 배낭을 맨 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한눈에도 시라는 김씨의 딸이라고 알아볼 만큼 무척이나 닮았다.
문을 열고 들어선 시라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하지만 김씨는 어색해 했다. 포옹을 하고 서로의 말이 통역돼 오갈 때도 김씨는 무척이나 낯설어 했다.
“원망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저를 낳아준 아버지를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좋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요.”
시라는 또박또박 말했다.
딸은 아버지에게 선물을 내밀었다. 김씨는 포장지를 잘 벗겨내지 못했다. 김씨는 여전히 떨고 있었다. 어렵게 포장지를 풀자 조그마한 앨범이 나왔다. 입양된 순간부터 대학 졸업까지 성장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앨범 안에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김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쏟아낼지 모른 채 그저 눈시울만 붉혔다.
오히려 시라가 김씨를 위로하고 나섰다. 시라는 김씨의 손을 꼭 잡고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잘 자랐는지 얘기했다. 남자친구도 “감동적인 모습을 사랑하는 시라와 함께 할 수 있어 기쁘다”며 “시라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김씨에게 말했다. 김씨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만 연거푸 되뇌었다.
김씨는 거제에 아내와 딸(24·치위생사), 아들(22·군복무중)이 있다. 아들을 제외하곤 김씨는 가족들에게 시라의 존재를 말한 상태다. 다행히 모두 이해해줘서 큰 어려움은 없다. 다만 곧 휴가나올 아들에게 아직 얘기하지 못한 점이 김씨는 마음에 걸렸다.
시라는 2주 동안 남자친구와 함께 김씨의 집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통역은 지원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언어가 부녀 사이에 더 이상 장애가 아닌 듯 보였다. 그들은 이미 눈으로, 표정으로, 굳게 붙잡은 손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 hu@fnnews.com 김재후기자
■사진설명=네덜란드 입양아 김시라씨가 22년만에 친아버지를 마나 포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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