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자식같은 古書,세상에 내놓습니다”…여승구 화봉문고 대표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11.10 12:05

수정 2014.11.07 12:16


서울 세종로사거리에서 신문로를 따라 걷다 서울역사박물관과 구세군 빌딩 사잇길로 꺾어 100m쯤 들어가면 오른쪽에 아담한 2층 건물 한 채가 나온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아름답게 단장한 평범한 서양식 주택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각종 진기한 책들로 가득 차 있는 책 박물관이다. “고서는 나의 생명이자 나의 분신이며,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는 철학을 가진 국내 최고의 고서 수집가 화봉 여승구씨(69·화봉문고 대표)가 그간 수집한 13만 여점의 고서와 그림들을 모아 최근 ‘화봉책박물관’을 연 것이다.

“고서가 학자나 애서가들의 전유물이 되거나 창고와 도서관에 갇혀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때로는 사람들이 고서를 팔면 한 밑천 단단히 챙길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하지만, 저는 고서를 팔 생각이 전혀 없어요. 고서가 그림이나 도자기 못지 않게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여씨가 고서 수집에 뛰어든 건 지금으로부터 23년전인 1982년. 국내 최초로 국제 규모의 도서박람회인 ‘서울 북페어’를 개최하던 중 유명 학원 국어강사였던 윤석창씨가 그를 찾아와 ‘님의 침묵’ 등 현대시와 소설 초판본 200여권을 팔아달라고 부탁했다. 여씨는 처음에는 몽땅 사들인 그 책으로 북페어 안에 ‘한국문학작품 초판본’ 소전시회를 개최한 후 북페어가 끝나면 경매에 부치려고 했다.
애당초 고서수집 같은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획대로 경매가 성사될 무렵 언론사 문화부장단과 식사를 하면서 한 언론인이 “여 사장, 그것을 왜 팝니까. 이 기회에 고서수집을 시작해서 나중에 박물관 하나 만드시죠”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책 박물관’은 듣기만 해도 흥분 그 자체였고, 이때부터 꿈에조차 생각지도 못했던 고서수집의 길에 뛰어들었다.

회사 일이 끝나면 인사동 고서점으로 달려가 곰팡내 나는 고서들을 한권 한권 뒤지기 시작했고, 청계천 헌 책방도 샅샅이 훑었다. 공치는 날도 많았지만, 어쩌다가 ‘물건’을 만나면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은 열락(悅樂)의 기쁨을 누렸다.

이렇게 해서 수집한 고서 가운데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고서는 ‘춘향전’과 ‘천로역정’. ‘춘향전’은 옥중화, 옥중가인, 춘몽록, 춘향가, 성춘향전, 열녀 춘향 수절가를 비롯해, 현대식으로 코믹하게 각색한 나이론 춘향전과 춘향의 재판 과정을 법률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법률춘향전과 같은 다양한 내용의 춘향전 판본 300여점이 박물관의 한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도 남는다.

이와 함께 서양에서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 ‘천로역정’ 100권도 그의 수집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고서 수집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1983년, 일본 오사카를 여행하던 중 기차역 앞에 있는 한큐 지하상가의 고서점가를 들렀다가 우연히 한국판 ‘천로역정’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그는 적법 절차를 밟지 않고 문화재를 들여왔다는 이유로 김포세관에서 밀수업자로 몰리기까지 했다.

“참 억울했지요. 우리나라 책을 외국에서 가져오는데, 왜 그것이 밀수가 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어요. 책을 통관시키지 않고 오사카로 돌려보낸 뒤 일본여행에서 돌아올 때 구입해서 세관에 신고하지 말고 그냥 여행 가방에 넣어 들어오는 편법(?)을 그때 알게 됐지요.”

그후 오기가 발동한 여씨는 ‘천로역정’을 모으기 시작했고, 세계 각국에서 발간된 초판본을 수집해 나갔다. 세계 각국에서 발간된 ‘천로역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재미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천로역정’ 속에 그려진 삽화가 나라마다 달라서 내용은 같지만 전혀 느낌이 다른 책을 만나는 것이다.

내년 2월 28일까지 갖는 개관기념전에 출품된 ‘세상에서 제일 큰 책’과 ‘세상에서 제일 작은 책’도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장품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책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한 ‘부탄(BHUTAN)’은 히말라야에 있는 특별한 왕국 부탄에 관한 이야기로, 가로 152.4㎝, 세로 213.36㎝에, 책 무게가 무려 48.896㎏이나 나간다.

또 일명 ‘좁쌀책’으로 불리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책은 가로 1㎜, 세로 1㎜의 ‘Old King Cole’로, 현미경으로만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5년간에 걸쳐 종이, 잉크, 디자인 방법에 관한 테스트를 거쳐 제작됐으며, 스코틀랜드의 전통 자장가가 총 12페이지에 고스란히 인쇄돼 있다.

여씨가 이처럼 지금까지 모은 전 재산을 투입하면서까지 화봉책박물관을 세운 데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서양에서 ‘세계 역사를 바꾼 지난 1000년 최고의 사건’으로 칭송된 ‘구텐베르크 금속활자 발명’ 보다 무려 100년을 앞서는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인쇄문화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브랜드로 자리잡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직지심경’(1234년)을 제외하더라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로 인쇄했다는 ‘42행 성서’(1450∼1455년)보다 훨씬 이전에 금속활자로 인쇄한 계미자(1403년), 경자자(1420년), 초주 갑인자(1434년), 병진자(1436년), 을해자(1455년) 등이 1000여권이나 남아 있는 것을 볼 때 한국이야말로 세계의 인쇄 종주국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금속활자 인쇄술은 오늘날 첨단산업의 상징인 ‘반도체’와도 일맥 상통한다. 시간과 자금이 많이 소요되는 목판활자 인쇄술과는 달리 금속활자 인쇄술은 활자를 부수고 다시 조립해서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당대 최고의 첨단기술을 응용한 창조적 작업이었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 철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제련기술과 목판이 아닌 금속에 잉크가 먹혀들게 하는 인쇄잉크기술, 그리고 1000년을 견디고도 전혀 손상이 없는 제지술의 총체가 바로 금속활자 인쇄술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독일의 구텐베르그를 누르고 세계에 당당히 인정받게 된다면 한국의 이미지와 한국의 상품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학자들도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세계 학계에 자랑스럽게 논문을 발표하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해 금속활자 인쇄술을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브랜드로 키워 나가야 합니다.”

고서 수집 동기와 화봉책박물관 설립 경위를 잔잔하게 설명하던 여승구 대표는 이 부분에서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세계에서 인정받게 되면 한국의 경제력도 지금보다 2배 이상 확대될 것이라는 판단때문이다.

“‘책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세상과의 약속을 저는 지켰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 박물관을 열고 보니 이건 장난이 아니에요. 박물관 유지비도 유지비이거니와 지금까지 피땀 흘리며 모아놓은 고서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선 뛰어난 연구자들이 있어야 해요.”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이 화봉책박물관을 키워 나가겠다면 흔쾌히 바치겠다고 밝히는 화봉 여승구씨. 정부와 기업이 운영하는 책박물관의 한 모퉁이에 앉아 고서를 통해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정리하는 책장이가 되는 게 일흔을 앞둔 그의 마지막 소원이다.

/ noja@fnnews.com 노정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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