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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포럼]비정규직 ‘차별금지’가 해법/정병석 노동부 차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11.28 12:09

수정 2014.11.07 11:50


정부는 지난 8일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정부안에 대해 노사 모두 반대하고 있고 노동계는 입법 저지를 위해 총파업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과 쟁점이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시장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시장으로 양극화돼 있고 이에 따라 근로계층간 격차도 크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는 대기업·중소기업 문제와 함께 노동시장 양극화의 한 축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98년 외환위기 이후 더 심각해지고 있다. 올 8월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540만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7%다. 최근에는 매년 80만명씩 증가하고 있다.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60∼65%, 사회보험적용률은 50%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도 우려할 정도다.

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조직·인력을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인건비가 높고 해고가 어려운 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하고 대신에 비정규직을 늘려왔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지자 지난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에서는 ‘비정규직대책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2년간 100여차례의 회의를 통해 대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노사간 의견이 전혀 좁혀지지 않아 2003년 7월 논의를 종결하고 쟁점별로 상세한 노사 입장과 공익위원 의견을 정부로 이송했다.

정부는 노사정위 공익안을 토대로 노사 입장, 선진국의 보편화된 입법 사례, 노동시장 현실 등을 감안해 정부 입법안을 마련하고 부처간의 협의와 입법예고·규제심사·국무회의 등 정상적인 정부 입법절차를 거쳐 국회에 제출하였다.

정부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간제·단시간·파견근로자 등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이 금지된다. 차별받은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신청할 수 있고 사용자가 노동위원회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최고 1억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둘째, 기간제 근로자가 3년을 넘어 근무한 경우에는 정당한 이유없이 해고할 수 없게 된다. 건설공사, 질병�^부상 근로자의 업무대체, 50세 이상 근로자 등의 경우에는 예외가 허용된다.

셋째, 파견근로의 경우 불법파견 제재(처벌수위, 파견근로자 직접고용 의무 등)를 강화하면서 파견대상 업무는 대폭 확대한다. 다만 건설현장 등 파견이 금지되는 업무는 현행대로 유지하고 제조업 생산현장도 지금과 같이 일시적으로만 허용한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법안이라며 반발하고 있고 경영계는 노동시장을 경직시키고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법안이라고 한다.

같은 법안을 놓고 이렇게 다르게 보는 이유는 뭘까.

노동계는 기업이 무분별하게 비정규직을 확산시키고 있으므로 가능한 한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만, 경영계는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어 비정규직의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에서만 보기 때문이다.

분명 비정규직이 이상적인 고용형태는 아니다. 그러나 정보화�^서비스산업의 발달에 따라 어느 정도 비정규직의 증가는 불가피하다. 또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규제를 과도히 높일 경우에는 고용감소, 외주전환 등으로 노동시장이 더 왜곡된다. 결과적으로 기업 부담도 커지고 비정규직 근로자도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 이미 선진국도 이러한 경험을 통해 고용의 유연성을 확대하면서 차별금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정부는 선진국들에서 통용되는 보편적인 입법례에 따라 비정규직 차별금지와 남용규제에 중점을 두되 고용의 유연성도 감안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마련했다.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 유인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해법이다. 그래서 차별금지가 특히 중요하다. 불합리한 차별금지를 통해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사용을 억제하고 정규직과의 격차문제를 완화시켜 나가려는 것이다.

노동계는 파견 대상 확대를 부각시켜 정부안을 ‘비정규직 양산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현재 파견근로자는 10만명 정도다. 비정규직 대부분은 기간제(360만명), 단시간(107만명) 근로자들이다.

현행 파견 대상 업무가 너무 협소해 기업에 도움을 주지도 못하면서 불법 파견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합법적 파견의 폭을 넓혀야 파견근로자가 제대로 보호받을 수 있고 청년층의 고용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선진국도 파견대상 업무 제한 등의 규제를 하고 있지 않으며 파견근로자 규모도 많아야 4% 수준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없이는 사회통합도, 균형발전도 요원할 뿐 아니라 결국에는 기업 경쟁력도 떨어진다.

최근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비정규직 증가로 인한 생산성 저하와 소비침체로 138조원의 경제적 손실과 1.7%의 국내총생산(GDP) 하락이 있었다고 한다.

이제 논의의 장을 국회로 옮겨야 한다. 노동계는 파업을 풀고 대화에 나서길 바란다. 경영계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양보하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국회도 노사 입장을 충분히 수렴하겠다는 처지고 정부도 국회심의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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