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골프일반

[골프산책로]골프장 ‘콧물 역지사지’

정대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4.12.23 12:18

수정 2014.11.07 11:08



오랜만에 스키를 탔다. 최고로 춥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한 겨울에 스키장의 열기는 하와이를 방불케 한다. 두번 정도 타고 나니 열이 난다. 그렇다고 점퍼를 벗자니 추울 것 같고 계속 입고 타자니 땀이 난다. 같이 타던 동료와 리프트를 탔다. 이런 저런 얘기하던 중 동료가 내 얼굴을 가만히 보더니 수건을 꺼내 코를 닦아준다.
나도 모르게 콧물이 주르르 흘렀던 것이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 비슷한 일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2년전인가 따뜻한 날이 이어지던 겨울이었는데 그날 갑작스레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이중 삼중으로 감싸지 않고는 못배길 날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날 일본인 단체팀이 있었는데 모두 제주도보다 더 아래쪽인 후쿠오카에서 온 관광객들이었다.

스타트로 나오면서 연신 ‘사무이(춥다)’를 외치던 그들. 그래도 이왕 온 골프장인데 하면서 볼을 치기 시작한다. 4홀 즈음 지났을까. 열심히 클럽을 바꿔주려고 페어웨이를 뛰어갔다.

클럽을 쥐어 주자마자 생크가 나든 말든 이리저리 볼을 치더니 그린으로 어찌 어찌 올리긴 했다. 퍼터를 쥐어주려 갔더니 4명이 모두 얼싸안고 ‘사무이’를 외치며 도저히 못치겠다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순간 “풋∼!”하고 웃음이 나왔다. 손님이 추워서 못치겠다고 하면 안타까워 하며 응대를 해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풋…’하는 코웃음을 내버렸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4명 모두가 코 밑에 콧물이 달랑거린 채 들어가겠다고 했던 것. 추위 때문에 콧물이 입까지 닿아 있었다는 걸 느끼지 못했던 듯 그 중 어느 누구도 그것을 처치한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 때는 웃었지만 내가 그 일을 겪으니 그 사람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갔다. 웃지도 않고 콧물을 닦아 준 동료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갑작스런 기온의 변화에 콧물은 쉴새 없이 흘러 내린다. 그것도 본인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만약 당신의 주위에서 누군가가 콧물을 흘리고 있다면 말없이 닦아 주는 아량을 배푸시도록…. 언젠가 당신도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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