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몸사리는 회계법인…집단소송 걱정에 깐깐해진 기업감사

김용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2.16 12:33

수정 2014.11.07 21:30



“생산라인을 세워서라도 재고 실사를 철저히 합니다. 해외현장 출장도 마다지 않고요. 예전처럼 채권채무 조회를 기업이 대신해주는 일은 이젠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자칫 실수할 경우 대규모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생각에 잠도 안옵니다. 이젠 대기업의 계열사라고 해서 사정을 봐주는 것도 없습니다.” (A회계법인 회계사)

“회계사들이 점심 먹자고 해도 안먹어요.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계사가 3명이 나오더니 올해는 6명으로 늘었어요. 회계 감사 때문에 생산이나 업무 진행이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회계사들의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B기업 회계담당자)

“집단소송제 때문에 회계법인 자체 내부심의제도를 크게 강화했습니다. 심리실의 권한이 높아졌지요. 모든 회계법인이 마찬가지입니다. 내부 심리를 통과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서 회계사들은 회계감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지요.” (A회계법인 임원)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의 영향으로 2004사업연도 회계감사 현장에서는 회계법인과 기업간 마찰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몸을 잔뜩 움츠린 회계법인과 급격한 변화에 대비하지 못한 기업간 시각 차가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

특히 회계법인들이 적정 감사의견 제출에 몸을 사리면서 기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들이 적정의견을 받지 못하고 한정이나 부적정, 의견거절을 받을 경우 주가급락이나 대출금리 인상은 물론, 심할 경우 증권시장에서 퇴출된다.

게다가 과거 분식회계 집단소송법 적용 유예에 대한 국회의 결정이 늦어지면서 회계법인의 감사도 계속해서 지연되고 있는 형편이다. ‘3월 회계 대란’ 우려감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6일 회계법인 중견간부인 L회계사는 “회계법인들이 지난 1월 중순부터 주요 기업에 대한 회계감사에 착수하긴 했지만 진행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도입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의 영향으로 회계법인들은 좀 더 강화된 잣대를 들이대고 있지만 회계감사를 받는 기업들의 태도는 과거와 별반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기업 회계담당자들은 회계법인의 감사가 예전보다 엄격해졌다면서 회계법인들의 ‘지나친 몸사리기’를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있다.

C기업의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제 등의 영향으로 올 들어 회계법인들이 더욱 위험을 회피하려는 쪽으로 회계처리를 하려한다”면서 “어느 때보다 회계 감사받는데 애로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과거 분식회계 집단소송법 적용 유예에 대한 국회의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적지않은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회계법인들이 일단 국회의 결정을 지켜보자는 태도를 취하면서 회계감사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회계법인 J회계사는 “국회가 과거 분식회계에 대한 집단소송법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 이전까지는 회계감사를 통해 확정할 수 있는 내용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대다수 회계법인이 의견을 유보하고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도 “집단소송법 도입과 함께 회계법인들이 감사의견을 보수적으로 정하는게 전반적인 추세”라며 “적정의견을 냈다가 잘못됐을 경우 소송을 우려해 회계법인들이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불과 1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 지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고 있다.
이와관련, 전국경제인연합회 양금승 부장은 “기업들이 과거 분식회계 해소 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채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며 “국회가 결정을 빨리 내려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yongmin@fnnews.com 김용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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