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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페라 테너 임형주]‘냉정한 보살핌,무관심한 사랑’ Only One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4.06 12:48

수정 2014.11.07 19:35



뛰어난 예술가 뒤에는 훌륭한 어머니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지휘자 정명훈,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첼리스트 정명화 등 삼남매를 세계 최고의 음악가로 키워낸 이원숙씨(87)나 ‘안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첼리스트 마리아, 피아니스트 루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안젤라 등 세자매를 뒷바라지한 이영주씨(59)는 ‘어머니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미성(美聲)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팝페라 테너 임형주(20). 이제 막 스무살 청년이 된 그의 뒤에도 ‘강한’ 어머니가 있다. 임형주를 매니지먼트하는 공연기획사 디지엔콤 대표 김민호씨(45)다.

최근 아일랜드 메리 맥컬리스 대통령 방한 때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음악회에 초청돼 잠시 귀국한 임형주(그는 현재 이탈리아 피렌체 산펠리체 음악원에 재학 중이다)가 어머니와 함께 ‘임형주의 온리 원(Only One)’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번 책에는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한 임형주의 어린시절과 팝페라 테너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 외에도 어머니 김씨가 직접 쓴 글을 싣고 있어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함께 그를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세운 어머니 김씨의 독특한 교육관을 동시에 만날 수 있다.


“내 기억과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은 엄마가 도와주셨다. 20년동안 엄마는 나의 가장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고 가장 무서운 교사이기도 했다.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나는 평범한 스무살 청년으로 안주했을지도 모른다. 내 꿈의 심지에 불을 붙여준 사람도, 도전하는 의지를 북돋워 준 사람도 바로 엄마였다.”

임형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머니 김씨의 교육관은 ‘냉정한 보살핌’과 ‘무관심한 사랑’으로 요약된다. 일례로 김씨는 아들이 참가하는 콩쿠르에 단 한차례도 따라간 적이 없다. “아버지는 물론 다른 가족들 역시 형주를 따라가지 못하게 했다. 온 가족이 몰려가 박수를 보내거나 환호를 보내는 응원은 없었지만 그래도 형주는 매번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김씨는 말했다.

김씨는 칭찬에도 인색한 엄마였다. 예원학교 성악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을 때도,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을 때도, 얼마 안되지만 장학금을 탔다는 소식을 전해왔을 때도 김씨는 가능한 한 “우리 아들 최고”라는 말을 아꼈다.

인생이란 어차피 홀로 가는 것, 독립심이야말로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 김씨는 어린 아들을 홀로 타지에 보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겨우 아홉살에 불과한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과 세살 아래인 딸의 등을 떠밀며 호주행 비행기에 태운 일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두고두고 화제가 되고 있는 일화다. “이참에 ‘남의 집살이’도 한번 해보라는 뜻에서 아이들을 호주에 있는 친구집으로 보냈다. 공항 탑승구를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남몰래 한숨을 내쉬기도 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결연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갈 때도 어머니는 따라나서지 않았다. 뉴욕에 도착해 머물 집을 구하는 일부터 레슨 선생을 찾는 일,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 입학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보는 일까지 모든 일을 어린 형주는 모두 혼자 해냈다.

“이른바 ‘예술’하는 아이를 둔 엄마들은 억척스런 행동주의자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들은 대개 아이가 레슨을 받는 동안 잠자코 기다리지 못하고 레슨실 앞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들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극성스런 엄마 때문에 흠집이 나는 보석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작은키에 우윳빛 피부를 가지고 있는 스무살 청년 임형주는 의외로 옹골찬 구석이 많다. 좀 더 넓은 무대를 꿈꾸며 미국 유학을 결정한 것도, 후견인이나 다름없는 피아니스트 얼 바이를 만나 팝페라로 방향을 선회한 것도, 미국 뉴욕에서 이탈리아 피렌체로 유학지를 변경한 것도 모두 그가 직접 결정한 사항이다. 짐짓 무관심한 듯하면서도 누구보다 냉정하게 아들을 보살폈던 어머니는 그 때마다 아들의 선택에 오른손을 번쩍 들어줬을 뿐이다.

아들이 제법 유명해진 뒤에도 어머니 김씨의 원칙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엄마’라는 호칭 대신 ‘김대표’라고 부르게 한다든지, 이런저런 행사장에 아들과 동행하지 않는 버릇도 여전하다. “아들과 함께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며 김씨는 무척 쑥쓰러워 했다.

거액의 CF 제안을 뿌리치고 TV 출연을 자제하는 것도 이런 어머니의 고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6개월에 몇 억원 하는 CF에 혹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끝내 물리친 이유는 초콜릿의 달콤함 뒤에 도사리고 있는 독(毒)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스무살인 우리 형주의 음악 활동이 여기서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고 김씨는 힘주어 말했다.

임형주도 “팝페라는 내 음악의 첫 걸음일 뿐 정착지는 아니다. 쉬운 길만을 골라 걷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언젠가는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 알프레도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달 말 발매되는 실황음반 ‘라이브 인 서울’ 이후 내게 될 네번째 정규앨범에서는 고음역에서 특별한 장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바로크 아리아를 선보이겠다는 야무진 계획도 이미 세워놓은 상태다.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반문하자 임형주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 나이 이제 스무살이다. 스무살은 뭐든지 꿈꿀 수 있고 어떤 일이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가. 도전과 패기는 스무살 청년의 특권이자 엄마가 내게 물려준 유산이다.”

/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사진설명

①임형주는 “냉정한 보살핌이야말로 어머니 교육의 핵심”이라면서 “내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서 어머니가 많은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②임형주에게 어머니는 무서운 교사였지만 가장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임형주는 “남자같이 씩씩한 어머니에게 당당함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③“어머니는 나에게 도전 정신과 패기를 유산으로 물려줬다.
어머니의 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평범한 청년으로 안주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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