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빈민국 지원 소홀한 미국/제프리 삭스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4.10 12:49

수정 2014.11.07 19:28



내가 쓴 책 ‘가난의 종말’에서 나는 2025년께 극도의 빈곤이 어떻게 끝날 수 있는지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에 약속한 지원을 이행할 때 가능한 일이다. 번영하기위해 장기적인 성장에 요구되는 민간 투자 분야를 육성하려면 건강과 교육체계, 비료개발 및 관개사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는 경제정책이 수행돼야 한다. 전력시설과 동력교통수단 등 기초설비도 필요하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들은 정치적인 통제가 잘 이뤄지는 나라조차도 이런 투자를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다.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적절하게 돕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에서 가장 부끄러운 일 중 하나다.
게다가 미국은 가난한 나라 돕기에 가장 소흘했다. 미국은 하루빨리 세상이 처한 현실을 깨닫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

부자 나라들이 했던 가장 잘 알려진 약속은 가난한 나라들에 최소한 국민총생산(GNP)의 0.7%에 해당하는 도움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이 약속은 44년 전인 지난 1961년에 나왔다. 당시 유엔총회는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외부 지원이 현저하게 늘어나야 한다며 “경제적으로 앞서가는 나라들이 되도록이면 빨리 가능한 한 국민총생산(GNP)의 1%에 가까운 지원을 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그 때 외부 지원은 부자국가 소득의 0.5%가량이었다.

이런 약속에도 불구하고 국가들의 지원은 계속해서 줄었다. 지난 90년대 초 가난한 나라들을 부흥하기 위한 공식 지원금은 여전히 지원국가 GNP의 0.33%안팎이었으며 지난 2000년대 초반에는 0.22%로 떨어졌고 지금은 약 0.25% 수준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동안 지원규모가 떨어졌는 데도 부자나라들은 GNP의 0.7%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되풀이 했다. 지난 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환경정상회담과 95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사회개발정상회담이 그것이다.

새천년이 시작되자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s)’를 도입하기 위해 세계 지도자들이 모임을 가졌다. MDGs는 오는 2015년까지 극빈층을 반으로 줄이자는 세계적인 약속이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지도자들은 2002년 멕시코 몬테레이에 모여 가난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한 ‘몬테레이 합의’를 도입하기로 했다. 부시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미국이 서약하는 가운데 부자 나라들이 또 다시 GNP의 0.7% 지원이라는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정부는 GNP의 0.7% 같은 어떠한 ‘자의적인’ 목표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조차 미국은 그같은 목표에 서명한 적이 없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은 “선진국들이 공식적인 개발 지원 명목으로 GNP의 0.7%를 지원한다는 구체적인 노력을 행한다”는 몬테레이합의에 분명히 서명했다. 이보다 더 확실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은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이 가난한 나라에 지원하는 정부개발원조(ODA)는 미국 GNP의 0.15%에 불과하다. 이는 세계적인 목표의 4분의 1을 밑도는 것으로 미국이 GNP의 4%를 군사비로 쓰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은 올해 국방비로 약 5조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다. 미국은 가난한 나라에 지원하는 평화적인 개발보다 군사적인 용도에 약 3배나 많은 돈을 쏟아붓고 있다.

전세계를 통틀어 보면 GNP의 0.7%를 지원금으로 제공하는 나라들은 덴마크,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다. 그리고 6개 유럽 국가들도 오는 2015년까지 GNP의 0.7% 지원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최근에 세웠다. 벨기에, 핀란드, 프랑스, 아일랜드, 스페인, 영국 등이다.

코피 아난 유엔(UN) 사무총장은 오는 9월 열리는 UN 정상회의에 앞서 지난달 발표한 유엔개혁 보고서에서 가난한 나라를 지원하는 모든 국가들은 오는 2009년까지 GNP의 0.5%를, 2015년까지 0.7%를 지원금으로 배풀 것을 요구했다. 아난 총장은 독일이나 일본처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 되기를 희망하는 나라들도 이 목표에 이르는 세계적인 의무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슬픈 일이지만 초부국 미국에 있는 이데올로기적 대변자들, 특히 월 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을 통해 대외원조에 지독하게 반대하고 있다. 100달러 중 70센트에 불과한 지원금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내가 쓴 책을 비판하며 내가 ‘무한정 퍼주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탐욕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나는 월 스트리트 저널이 대다수 미국 부자들의 이해관계나 견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고 절대 확신한다. 미국 부자 중에는 기부를 통해 수백만명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백만장자나 억만장자들도 포함돼 있다.

빌 게이츠를 포함해 세상에 알려진 많은 자선가들은 이미 이 길을 앞장서서 가고 있다. 나는 부자들이 막대한 소득 중에서 작은 부분을 기부해 매년 수백만명을 살리고 가난한 나라들이 경제부흥의 사다리를 타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이들이 거의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부자들은 그들이 기부한 돈이 생명을 살릴 뿐 아니라 훨씬 더 안전하고 번영된 세상을 만들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100달러 중 70센트를 주면서 무한정 퍼준다고 걱정하지 말자. 그 대신 부자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슬로건은 ‘나을 때까지 지원하자’가 돼야 한다.


/정리= cameye@fnnews.com 김성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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