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칼럼]‘투기 전쟁’ 이기는 싸움하라/남상인 부국장·건설부동산부장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4.11 12:49

수정 2014.11.07 19:24



개전(開戰) 한달 보름이 지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국회에서 취임 2주년 국정연설을 하면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 전시체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서의 승전보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고 있다. 내놓을 만한 전리품도 없는데다 종군기자들을 통해 전해지는 전황은 되레 악화되고 있다. 패전 소식 뿐이다. 집값 오름세는 가속화되고 살리려는 건설경기는 꿈쩍도 않고 있다.

한 부동산 정보제공 업체가 조사한 1·4분기 전황을 지난해 동기와 비교해 보면 적들의 기세는 위풍당당하다. 서울의 아파트 값은 평균 2.65%(지난해 1.59%)나 올랐다.
특히 재건축 아파트 값은 평균 8.73%나 뛰어 지난해(4.21%)의 2배를 넘었다.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값도 3.30%(지난해 1.22%)나 뛰었다. 경기 분당은 5.94%나 올라 아파트가 평당 1200만원대를 넘었다. 분양가와 땅값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서울 수도권은 대패나 다름없다.

대통령의 선전포고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도 패색이 더 짙기 전에 내집을 마련하려고 바쁘다. 전쟁으로 인한 경기 악화를 우려해 주택사업 부지를 확보하지 않은 업체들은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당초 재건축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50가구 이상 아파트 재건축 때 임대아파트를 의무적으로 짓도록 했다. 지난달 17일에는 용적률 증가가 30%포인트 미만이면 임대아파트 건설을 면제한다고 입법예고했다가 불과 5일 만에 뒤집는 기동성있는 전술을 선보였다. 전시가 아니면 정부나 정책의 공신력과 체면 때문에 채택하기 매우 어려운 병법이다.

며칠 전에는 보도전에서도 밀린다고 생각했는지 건교부 주택국 장수가 방송에 나와 그동안 치른 전투에서의 승리를 자랑했다. 때문에 집값은 안정되고 위기국면을 보였던 주택시장이 정상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믿고 기다릴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부가 패배를 위장하는 것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건교부는 또 주택시장 조기경보시스템(EWS)을 통해 지난 2월의 주택경기 동향을 분석한 결과 국내 부동산시장이 ‘정상 단계’였다고 지난주 밝혔다. 건교부 주장이 맞다면 대통령은 잘못된 판단을 한 셈이다. 정상 상태인 부동산시장을 상대로 쓸데없이 선전포고를 해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가 전리품에 급급하다보니 실효성이 떨어지는 탁상병법까지 마구 동원하고 있다. 승리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무리수도 잦아지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부동산 시장의 급박한 전황으로 승전을 외치던 지난주 건교부의 여유 또한 길지 않았다. 어제는 서울 강남권의 중·고층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을 사실상 금지하고 저층 아파트도 최고 35층 이하로 제한하는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또 서울 강남권의 20년 이상된 모든 재건축 추진 단지에 대해선 가격 동향과 재건축 추진 단계별로 상시 모니터링을 실시한다. 문제가 있는 곳은 건설교통부 장관 직권으로 즉각 재건축 추진을 원천 봉쇄한다. 정부의 공격이 갈수록 강렬해지고 있다.

그러나 다수의 부동산 전쟁 전문가는 정부가 다양한 전술을 동원하고 있지만 공급 부족까지 뛰어 넘는 장기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지금 생각하면 대통령의 선전포고도 너무 성급했던 것 같다. 투기 세력과 실수요자 분포가 어떤지. 지피지기도 자주국방도 안된 상황에서 선전포고부터 앞섰다. 게다가 전쟁을 지휘하는 아군의 총수인 건설교통부 장관이 전쟁 전 적과 내통한 혐의 때문에 옷을 벗었다. 전황이 좋을 수 없는 여건이었다.

아무리 전시라고 하더라도 건교부 진영은 위장 전술이나 게릴라전, 신뢰하기 어려운 보도자료전 등 탁상병법 위주의 전술 적용은 피해야 한다. 신뢰와 일관성, 시장원리를 갖춘 정공법 전략으로 승부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행히 새 총수는 수십년 동안 건교부 병영에서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 누구보다 적을 소상히 알고 있다고 한다. 전투 경험도 많아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적임자라고 한다.
그는 휘하 장수들의 능력까지도 꿰뚫고 있고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지략까지 갖췄다고 한다.

게다가 취임 일성으로 부동산투기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포부부터 밝혀 임전 각오 또한 대단한 것 같다.
새 총수가 펼치는 투기와의 전쟁 2기에선 건교부 진영이 승리를 공인받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 somer@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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