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信不者 대책 성공 조건/이성규 국민은행 부행장

이영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4.13 12:50

수정 2014.11.07 19:20



금융계의 실무자로서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항상 부딪히는 딜레마가 있다.

먼저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감안해 원리금 부담을 과감히 덜어주는 방안을 마련한다. 그러면 곧바로 도덕적 해이라는 질타가 날아온다. 당연히 옳은 말이다. 많이 깎아주면 지금껏 성실하게 빚을 상환해오고 있는 채무자들을 실망시키게 된다. 이들의 상환 의지 희석은 추가 부실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의 여론 비판을 피하려다 보면 당연히 원리금의 감면 폭이 줄어든다. 그러면 반대로 그런 방안이 신용불량자를 줄이는데 무슨 실효성이 있느냐는 비판을 면치 못한다.

세상사 모든 것이 다 양면성이 있게 마련. 그러나 신용불량자 문제만은 특히 도덕적 해이와 실효성의 논란 모두가 옳기 때문에 그 어느 쪽도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기란 쉽지가 않다. 여기에 공개적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어려움이 있다. 결국 개별 금융회사로서는 부실채권 문제는 공개적인 처리를 극히 꺼리게 된다.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대외에 밝히지 않고 몰래 숨어서 하는 게 잡음이 없고 편하다. 채무자를 개별로 만나 협상하는 것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금융회사가 부실 채권을 회수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추심 관리비용이 들어간다. 신용불량자의 재산을 조사한 후 상환 여력을 가늠해 받아야할 만큼을 상환 요구액으로 제시하고 나머지를 탕감해주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

이러한 개별 금융회사의 추심 프로세스도 신용불량자의 수가 크지 않을 때나 경제논리가 작동한다. 그 숫자가 이미 수백만 명에 이를 때는 어떻게든 풀어내야 할 사회적 문제가 된다. 그대로의 방치는 경기 회복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한다.

수많은 신용불량자가 일일이 채권금융회사를 찾아가서 상환스케줄을 협상하고 정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어렵고 물리적으로도 너무 복잡하다. 금융회사들이 공동으로 채무조정의 협상 창구를 단일화하는 편이 훨씬 경제적이고 쉽게 끝이 난다.

이쯤 되면 금융회사별로 비공개로 처리하는 방법은 물 건너간 셈이다. 채무조정의 대상과 원칙을 명시하고 공개적으로 처리하는 게 효율적이다. 이로써 또 다시 도덕적 해이와 실효성 논란에 휩싸이는 부담이 뒤따르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에 몇 가지 원칙을 못박는 일로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첫째, 채무조정 대상채권은 사전에 확정돼 있어야 하며 절대로 추가하는 조치는 없어야 한다. 둘째, 공개적인 처리 기간을 길게 가져가서는 안된다. 셋째, 어떤 일이 있어도 단 한 번의 행사로 그쳐야 하며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음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끝으로 중요한 결정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채무조정의 혜택 수준이다. 원리금 상환 부담을 어느 정도나 경감시켜 줄 것이냐에 대해서는 일률로 말할 수 없지만 경험으로 보면 고금리 연체 이자에 따른 부담은 크게 깎아주고 장기분할 상환을 통해서 신용불량자가 갚아야 할 채무의 실질 가치는 줄여주되 원금만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러한 수준의 채무조정을 놓고서 별반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수준보다는 순서다. 신용불량자가 금융회사에 상환 의지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추가 감면 혜택을 줄 것인지는 그 다음에 금융회사들이 채무자의 성실한 상환스케줄 준수 여부를 확인한 후 판단할 일이다.

도덕적 해이와 실효성 사이에 정해진 황금분할은 없다. 한쪽의 제고는 다른 한쪽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소모적인 개념 논쟁보다는 상환스케줄을 지키겠다는 채무자의 의지와 그 갱생 의지를 실효성 있는 보상으로 완성시키겠다는 금융회사의 약속 이행을 모니터링하는 장치를 고민하는 게 더 가치가 있다.

이달 하순 신용불량자 등록제도가 없어진다고 한다.
명칭이 없어진다고 해서 금융회사들의 신용 상태 확인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 강화될 공산이 크다.
궁극적인 인생의 신용 회복을 위해서 신용 회복지원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타진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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