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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佛은행의 개인고객 유치戰/안정현 파리 특파원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4.14 12:50

수정 2014.11.07 19:17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지던 은행 요구불예금에 대한 이자지급이 가능해졌다. 지난달 중순 프랑스 정부는 요구불예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허가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프랑스는 은행 간 과열 경쟁을 억제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일반 은행의 요구불 계좌에 대해 이자를 지급할 수 없도록 해 왔다. 대신 이 계좌에 연동된 개인의 수표 발행에 대해 어떤 수수료도 받지 못하게 함으로써 고객에게 보상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다.

이같은 관행은 지난 10여년간 주변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 줄곧 논쟁의 대상이었다. EU 대부분의 나라에서 은행들이 자유롭게 요구불예금 금리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역내 외국 은행과의 불공정 경쟁을 유발한다는 것이 가장 주된 이유였다.
프랑스 은행들이 상대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시중 은행들은 요구불예금에 대한 이자 지급을 허용하는 독일에 가서 좀더 호의적인 이자율로 독일의 기존 은행들과 경쟁할 수 있다. 반면 독일 은행들은 프랑스에 진입할 경우 같은 방식으로 프랑스 시중 은행에 가입돼 있는 고객들의 유치경쟁에 나설 수가 없다.

이를 상호주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주변국 은행들과 EU 경쟁당국은 줄기차게 수정을 요구해 왔다. 이 문제는 결국 브뤼셀의 유럽재판소에 회부됐고 재판소가 금지 결정을 내림에 따라 결국 프랑스 정부도 굴복하기에 이르렀다.

막상 규제 철폐가 프랑스 은행권에 어떤 판도 변화를 가져올지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기존의 프랑스 대형 시중은행의 아성에 도전하는 외국계 은행들과 보험사 계열사로 출발한 은행들의 경우 엇갈린 전략을 내놓고 있다.

한편으로는 시중 은행들에 대해 지점망 수에서 열세인데다 주거래 은행을 잘 바꾸지 않는 프랑스인들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현재 제공 가능한 수준인 1%대의 요구불예금 이자율은 소비자들을 움직이기에 매력적인 상품은 못 된다는 계산을 내놓고 있다. 특히 이미 저축성 예금 시장 공략에 성공함으로써 일정한 자리를 잡는데 성공한 대형 보험사의 계열 은행들은 저축성 예금 상품에 특화하는 기존의 전략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 네덜란드 ING의 프랑스 현지 은행법인인 ING 디렉트 프랑스를 꼽을 수 있다. 지난 5년간 가입자 40만명과 수신액 100억유로를 달성하며 효자상품으로 자리잡은 ‘오렌지 저축통장’ 상품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프랑스 대형 보험사인 AXA와 AGF에서 저축상품을 취급하기 위해 설립한 계열사 은행들도 같은 전략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동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고객의 경우 이자를 지급하는 요구불예금은 매력적인 상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곳은 스페인계 은행으로 프랑스에 진출한 카익사(Caixa) 은행이다. 이 은행은 당국의 요구불예금 이자지급 제한이 폐지되는 날부터 당장 연 1.5%대 금리의 요구불예금 상품을 출시했다. 이 은행은 대기업 중역 및 고소득 자영업자 등 높은 소득을 정기적으로 벌어들이는 층을 잠재 고객층으로 보고 있다.

신규 은행들의 발빠른 움직임에 대해 기존 대형 시중은행들은 아직 느긋한 모습이다. 은행권이 금리 경쟁에 나설 것이라는 당초 기대와는 달리 선도 시중은행들은 지금처럼 요구불예금에 대해 이자를 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방대한 지점망을 통한 근접성, 수표와 신용카드 사용의 편의성을 신규 은행들이 이자율 보상만으로 뒤집기는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긴장의 고삐는 늦추지 않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들은 고수익 저축 상품 및 프랑스판 뮤추얼 펀드에 해당하는 SICAV 등 취급 상품을 다변화하고 이를 기존 고객의 요구불 계좌에 연동시켜 수익성과 유동성을 동시에 제공하는 전략을 한층 강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더 다양해진 선택 앞에 프랑스 소비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판도를 좌우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새 환경에서 기존 시중 은행들이 고객을 붙잡아 둘 수 있을지 아니면 여유를 부리다 신규 경쟁자들에 시장을 잠식당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junghy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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