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 듣는다]美 민주주의의‘두얼굴’/조지프 스티글리츠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4.17 12:51

수정 2014.11.07 19:14



부시 행정부는 외교 정책의 중심을 민주주의 확산에 두기로 했다. 이는 단순히 미국의 패권을 확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숭고한 소명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부시가 정말로 그럴 뜻이 있는지, 그리고 그가 민주주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하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치러진 지방선거를 찬양했다. 그러나 투표권을 포함한 여성들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가. 또 부시 행정부는 민주적으로 뽑힌 베네수엘라 지도자를 권좌에서 밀어내는 것을 환영했다. 그를 축출하는 일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다 치더라도 말이다.
반면 부시 행정부는 파키스탄의 군사 독재자를 계속 지지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서기는 했지만 이는 푸틴이 사업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취한 뒤부터였다. 또 부시 행정부는 러시아의 언론 집중에 대해 우려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이탈리아의 언론 집중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위선의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다. 부시 행정부가 선거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정기적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 이상이 걸려 있으며 선거의 정당성은 선거 프로세스 자체에 대한 일반의 신뢰에 달려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두차례에 걸친 미국 대통령 선거는 좀처럼 세계의 모범이 되기 힘들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최근 치러진 선거가 미국이 옹호해야 할 기준에 부합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이끄는 애틀랜타 센터는 전세계 곳곳의 선거를 감시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투표권이 있는 모든 미국인들은 누구나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 노력했다. 반면 공화당은 이같은 진전을 거꾸로 되돌려 등록과 투표 모두 어렵도록 장애물을 놓았다. 현대 기술은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투표기를 통해 검표를 하기 쉽도록 해주었지만 여전히 여러 주에서는 이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제공하려 들지 않는다.

선거 말고도 시민들은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어야만 정부를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알 권리에 관한 법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물론, 정치가들은 감시받지 않고 은밀히 일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근로자를 고용해 놓고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기한테 보고하지 않아도 좋다고 허용하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정치가들은 시민을 위해 일하고 있고 따라서 시민들은 그들의 피고용인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

시민들은 그들의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정책을 짤 때 누가 자문을 하는 지를 알 권리가 있다. 그들은 엔론과 석유회사들이 에너지 정책을 쥐고 흔들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시민들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있다는 잘못된 주장에 왜 미국과 세계가 오도됐는지를 알 권리가 있다.

내 연구는 비대칭적 정보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집중돼 왔다. 그러나 정확한 정보 결핍은 더 심하지는 않을지라도 경제와 똑같은 정도로 정치 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라크와 전쟁을 치르기로 한 결정이 가장 극적인 예가 되겠지만 부시 치하의 미국에는 더 많은 사례가 있다. 노년층을 위한 의료보험 제도인 메디케어에 약품 공급 혜택을 주기로 한 결정은 잘한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가격협상 여지를 제한한 것은 제약회사에 대한 명백한 퍼주기다. 현재 추산으로 향후 10년간 1조1000억달러가 넘을 것으로 보이는 그 비용에 대해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 역시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이 비용은 당초 부시 행정부가 제시했던 액수의 3배 수준이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당면한 사회보장제도의 위기에 관한 허위정보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회보장제에 대해 뭔가 조처를 취해야 하긴 하지만 이 문제가 위기 징조를 보일 정도로 큰 것은 아니다. 도리어 2001년과 2003년에 깎아준 세금의 일부만 투입했어도 사회보장제도는 앞으로 75년간 탄탄한 기반을 갖출 수 있었을 것이 틀림없다.

진정한 정보는 알 권리만이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말할 수 있는 권리 역시 필요로 한다. 앞서 말했듯이 러시아 TV 방송의 다양성 결핍에 대한 정당한 지적과는 대조적으로 부시는 여전히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미디어 집중 완화 노력에 제동을 걸고 있다.

민주주의는 또 개인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필요로 한다. 그 누군가에 대한 권리 침해는 모든 이들의 권리를 위험하게 한다. 그러나 부시 치하의 미국은 국가가 시민의 신체를 구속하려 할 경우 이를 사법부가 검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인신보호영장과 같은 기본적인 시민권을 침해하고 있다. 정식 기소나 재판도 없이 관타나모에 수감된 개인들의 구속 기간을 연장한 것은 이 권리를 기본적으로 없애 버리는 것이다. 다행히 부시가 이같은 기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미국 법원은 이를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미국 법원들은 부시 행정부에 강제로 이 원리들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끝으로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이 주창하는 최소한의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과연 투표가 무슨 가치를 갖겠는가. 대다수 국민이 최저생계 수준 아래서 살아가는 나라에서는 돈을 주고 표를 사는 일이 너무 쉽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인식하고 있는 유일한 경제적 권리는 목숨 잃을 병에 걸린 이들의 이익보다 제약회사의 이익이 우선시되는 지적재산권과 많은 국가들을 황폐화하는 자유로운 자본 이동이라는 권리 뿐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세계 각국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부시 행정부가 현재 강제로 민주주의 확산을 옹호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스스로를 더 세밀히 들여다 보고, 미국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들을 더 정직하게 조사한다면 또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토론에 나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신뢰를 얻고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정리= dympna@fnnews.com 송경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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