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영 뉴욕포커스]외국자본 세무조사 철저하게/미국 롱아일랜드대 교수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4.18 12:51

수정 2014.11.07 19:10



국세청이 외국계 펀드들에 대해 세무조사를 착수한 것과 관련해 국내외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적을 불문하고 국제자본시장에서 통용되는 ‘게임의 룰’을 어긴 펀드들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색출되어야 하며 이에 상응한 벌칙이 수반되어야 한다.이러한 과정을 통해서야만 국제 금융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며 금융업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자산운용산업 전체의 이미지 실추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과연 무엇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게임의 룰’인가 하는 것과 이에 대한 해석이 자국의 이익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예를 들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이중과세 방지협약만 해도 그렇다. 칼라일과 론스타 모두 우리 나라와 조세협정을 체결한 말레이지아와 벨기에에 법인 본부를 두고 있다.
따라서 그들이 아무리 수익을 많이 냈더라도 우리 나라에서는 과세를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법 적용에는 전제가 깔려있다.펀드의 정상적이고 정기적인 영업활동은 본사가 위치한 현지 법인에서 이뤄지며 국내의 영업활동은 본사의 지시에 따라 단순거래 행위만 대행하는 경우에만 그 법에 적용될 수 있다.

만일 이들 자본의 현지 법인이 주주 및 투자자의 활동이 미미하고 의사결정과정 등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입증되거나 국내에서의 영업활동에 있어 각종 회계 또는 영업실적 등을 위장한 사례가 드러난다면 국가간 조세협약 자체가 성립될 수 없으며 해당국가와 과세 여부 등을 다시 협의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국내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금융선진국들에서도 골칫거리다.바야흐로 현재의 국제금융 사회는 헤지펀드로 대표되는 각종 사모펀드들의 전성시대다.전 세계에 8000여 개가 넘는 헤지펀드들이 난립해 있으며 국경을 초월해 그들이 운용하는 자금의 규모 역시 천문학적 수준이다.그들 중 많은 수의(전체의 약15% 정도) 펀드들이 버뮤다, 버진 아일랜드, 혹은 케이만 군도 등 소위 조세 피난처(Tax Heaven)에 본사를 두고 있다. 이들 중에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과세를 피해 가는 펀드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문제의 펀드들도 물론 섞여 있다.

최근 미국의 증권감독원(SEC)과 국세청(IRS)은 이러한 세금의 탈루와 불법행위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방지하고 색출할 수 있을 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자칫하다가는 국제자본시장에의 유동성 제공과 투자자의 자산과 위험분배 등 헤지펀드의 대표적 순기능 자체를 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단기 차익을 노린 일부의 투기성 헤지펀드들이 활개치고 이에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었던 기업이나 자본들이 존재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국제금융시장의 다양화와 유동성 증가라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서 어쩔 수 없이 치뤄야 하는 비용이기도 하다.엔론과 타이코가 투자자들을 속인 부도덕하고 부정한 회사였다고 해서 투자자들에게 미국의 주식투자 전체를 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국내 시장에서 외국 자본의 존재와 영향력은 지대한 역할을 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시중 은행 8개 모두가 외국인 지분이 절반을 넘는다. 증시에서 외국인 보유 비율은 40%대를 웃돌고 시가 총액 상위 5대 상장회사의 외국인 지분도 대부분 국내 자본을 앞질렀다.이러한 현실에서는 외국자본의 양적 성장에 따른 찬반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다. 좋든 싫든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이고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그지 않는 한 이를 역행할 수도 없다.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더욱 그러하다. 금융허브의 기본은 세계 어느 자본이라도 우리 시장에 들어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터를 제공해 주는 것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부 투기성 외국자본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우려는 당연하다.그러나 외국자본이 모두 투기성자본은 아니며 그들의 국내시장 기여도 역시 무시할 수 없다.이제는 외국자본에 대해 환상을 가질 필요도 없지만 막연한 반감을 갖는 것은 더 위험하다.


이번 세무조사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가 합법은 보호하되 불법에는 단호하다는 점을 국제시장에 보여줄 필요는 있으나 건전한 자본의 유입에 악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 외국 투자자들에 있어 한국의 세제에 대한 불만은 높은 세율이 아니라 ‘불확실성’이었다.
세무조사라는 수단이 종종 정치적으로 악용된 아픈 과거에서 비롯된 이러한 불확실성을 씻기 위해서라도 이번의 문제는 국제관행에 따라 엄정하고 투명하게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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