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사, K사, H사, S사, K사 등 국내 건설·부동산 업계의 굵직굵직한 ‘간판스타’들이 해외사모펀드 아시아본부 회장을 사칭한 한 40대 재미동포의 사기행각에 줄줄이 속아 넘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참여정부가 경기부양차원에서 BTL(Build Transfer Lease·민자건설후 정부에 임대) 사업을 비롯한 각종 민자유치를 적극 추진하는 가운데 ‘외자’에 목말라 있는 국내 업체들이 허술하게 당한 것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21일 국내 중견 건설업체의 한 임원은 “외자유치라는 말에 현혹돼 재미동포 토마스 리와 협약을 체결한 많은 중견 건설업체들이 그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황해하고 있다”면서 “상당수 업체는 아직 사기당했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채 외자가 유치되기만 기다리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뉴잉글랜드펀드코리아’ 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재미동포 이씨는 지난달 기획예산처 강당에서 열린 ‘BTL 투자사업설명회’에 참석한 국내 중견 건설업체 임원들에게 외자를 유치해주겠다고 접근했다.
BTL사업과 관련, 많은 자금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은행 등 국내 제도권에서 사업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중견 건설업체들은 외자유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좋은 조건으로 외자를 유치해주겠다는 이씨의 말은 사업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건설업체 관계자들에게 ‘어둠속의 빛’이 됐다.
이씨는 1000억원 투자자금 대출에 대한 선이자조로 20억원의 자금을 업체 관계자들에게 요구했다. 하지만 어느 업체가 이씨의 요구에 응했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많은 업체들이 회사 이미지 실추를 막기위해 ‘쉬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씨는 또 건설업체 관계자들을 유인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 서울소재 유명 J대학 총장, 건설 관리(CM)전문회사인 H사, 국내 유명 대기업 등과의 유대관계를 내세웠다. 실제 CM전문 H사는 지난해 11월 ‘뉴잉글랜드펀드코리아’와 정식으로 업무협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K사, H사, S사 등도 이씨가 내세운 회사와 협약을 맺었다. 이씨는 또한 수조원 규모의 달러가 입금된 미국 최대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잔고증명서 등을 자랑하기도 했다.
한 중견업체 관계자는 “기획예산처에서 열린 사업설명회에서 만난 사람이어서 어느정도 믿음이 간데다 뉴잉글랜드펀드코리아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사진을 통해 유명 CM사 및 대기업 등과 실제 업무협약을 맺은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없이 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CM사 관계자는 “지난해 업무협약을 맺을 때까지만 해도 이씨에게 미국에서 돈이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 업무협약을 맺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들 회사는 이씨에게 속은셈이 됐고, 이들 회사의 공신력을 믿고 계약을 맺은 많은 중견업체들도 피해를 봤다.
이씨는 결과적으로 산전수전 다 겪은 대기업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까지 속인 ‘희대의 사기꾼’인 셈이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이씨의 허점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우선 펀드 본사라고 소개한 미국 뉴욕소재 사무실의 전화 및 팩스는 불통이다. 또 이씨가 내세운 수조원 규모 계약서 등의 본문내용과 사인 문구에 나와있는 시점이 1년 이상 차이나는 등 계약자들이 주의를 기울였다면 ‘사기’를 미연에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 널려있다.
결국 이씨는 외자유치를 간절히 원하지만 외자유치 절차에 대해서는 ‘까막눈’인 국내 중견업체의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한편, 서울 강남구 도곡동 대림아크로빌에 사는 이씨는 서울경찰청 외사과에 의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공정증서원본불실기재·유가증권 위조 및 행사·사문서 위조 및 행사 등의 혐의로 21일 구속됐다.
/ jsham@fnnews.com 함종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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