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노동복지

비정규직법 협상 ‘벼랑끝 간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4.28 13:02

수정 2014.11.07 18:49



국회에서 노사정이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법 협상이 ‘벼랑끝’을 달릴 전망이다.

노사정은 이달 초 시작해 8차의 협상을 벌였으나 핵심 쟁점에서는 여전히 날카롭게 맞서고 있다. 게다가 국회가 내놓은 협상 시한인 29일을 넘겨 4월 국회 처리를 위해 허용된 마감시한까지도 넘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인권위 권고안 약화에 초조해진 노동계 = 노동계는 ‘국가인권위 권고안 약발’이 약화된데다 정부와 경영계의 완강한 태도에 속이 타고 있다.

지난 14일 인권위의 의견 표명 이후 한국노총은 ‘인권위 의견이 바로 우리 의견’이라고 반겼고 민주노총은 ‘미흡하지만 비정규직 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인권위 의견에 기간제 근로자(임시·계약직) 사용 사유 제한·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명문화 등 양대 노총의 핵심 주장이 모두 담기자 민주노총은 당초 안에서 파견제 폐지부분을 철회하면서까지 ‘인권위안 쟁취’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비정규직법 협상이 거듭됐는데도 노사간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기간제 근로자 사유 제한 문제를 중심으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노동부는 정부의 대화의지 부족 등을 강력히 비난하고 나섰다.

노동계는 협상의 논점이 정부안에서 인권위안으로 가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자 ‘인권위안 수용한 4월 처리’를 요구하며 정부와 경영계를 압박했으나 ‘인권위 약발’이 약해지며 다시 정부안으로 돌아가자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는 또한 다음 달 1일 ‘근로자의 날’(메이데이)을 맞아 대규모 집회계획이 잡혀있는 상황에서 ‘부족할 수 밖에 없는’ 협상을 마무리 지을 경우 성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부담도 안고 있다.

더욱이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노사정 대화 복귀과정에서 골이 깊게 파인 반대파의 역공을 의식해 ‘섣부른 협상은 결정타’가 될 수 있다는 부담을 안고 있어 협상의 조기 종결은 더욱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와 노동계 사이에 끼인 고달픈 경영계 = 경영계는 협상에 나오면서도 ‘비정규직 보호입법=사용자 부담 가중’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를 대표하는 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노동부가 지난해 11월 국회에 비정규직법안을 제출한 뒤에도 “차라리 안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나타냈으며 지금까지도 ‘마지못해 나오는’ 처지임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달 초 국회가 노사정 대화를 주선해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경영계는 비정규직입법에 대해 노동계와 협상해봤자 합의는 힘들고 ‘얻기보다 내 줄 일밖에 없을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경영계는 노사정 협상과정에서 “노동계가 정부안을 (비정규직 보호차원에서) ‘개악’이라고 주장하지만 경영계에는 부담”이라면서 “정말로 개악이라고 생각하면 현행대로 하자”고 몇차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정부가 추진하는 입법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은 ‘도전이나 반발’로 비칠 수 있어 협상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계는 최대 쟁점인 기간제 근로자 사용 사유제한 논의에서 정부안을 벗어난 의견을 두차례나 내놓았다고 이를 바꿔 노동계로부터 ‘정부 압력을 받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영배 경총 부회장도 이에 대해 “‘정부압력’ 주장은 적절하지 않다”고 소극적인 해명으로 대응한 점도 이런 어려움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 안(案)이 정답’ 입장 고수하는 노동부 = 국회에 비정규직법안을 제출한 노동부는 ‘정부안이 정답’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동부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날카롭게 맞서는 이 법안을 지난 2년여동안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해왔고 객관적인 입장을 가진 공익위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법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균형잡힌 법안’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마땅한 법도 원칙도 없는 가운데 비정규직이 날로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호 80%, 고용 유연성 20%’의 비율로 내용을 채우고 있는 ‘보호법안’이기 때문에 노동계에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또한 이 비정규직법 못지 않게 시급하고 중요한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을 연내에 입법화한다는 목표를 갖고 “이번에 물러서면 로드맵도 어렵다”며 국회의 ‘4월 처리’ 강행을 내심 바라고 있다.

이에 따라 노동부는 국회가 법안을 처리하기 전에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소집한 ‘국회-노사정 간담회’에서 최대한 법안 입법 취지를 설명하고 ‘정부안의 골격’을 지킨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표결처리냐 직권상정이냐…4월 처리 유보 가능성까지 = 비정규직법을 둘러싼 노사정의 이런 상황들이 협상을 ‘벼랑끝’으로 몰고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국회는 노사정의 생각을 고려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당초 협상 시한으로 못막았던 ‘26일(국회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29일(법사위 경과기간 생략을 고려한 시한)’까지로 연장했다.

그러나 노사정 대화가 결렬 위기까지 맞으며 29일 국회 환노위의 표결처리 계획을 다시 무너뜨리고 직권상정 등 ‘비상 수단’을 동원한 처리를 고려한 국회 본회의시한(5월4일) 직전까지 처리시한을 연장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협상 막판까지 완전 합의는 어렵겠지만 합의에 근접한 의견 접근 가능성도 여전히 열려 있으며 국회는 ‘합의된 만큼’ 반영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목희 국회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원장도 전날 협상이 파행으로 끝난 뒤 “29일 전체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지만 합의가 안되면 절차 문제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밝혀 논의시한 연장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한 인권위안을 수용해 4월 국회에서 처리를 촉구하던 노동계 일각에서는 협상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4월 처리는 물건너 갔다’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동연구원 한 연구위원은 “협상 당사자들이 법안의 내용 논의보다 서로 다른 명분 쌓기와 책임 떠넘기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사회적 파장이 클 수밖에 없는 이번 법안에 대해 노사정이 합의 처리했다는 선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진지한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jongilk@fnnews.com 김종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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