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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구토]어느날 발견한 존재에 대한 역겨움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6.01 13:06

수정 2014.11.07 17:56



매일 그날에 일어난 사실들을 빠짐없이 일기에 빼곡히 적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아무리 사소한 일들이라도 빼놓지 않고 그 사안의 뉘앙스까지 살려서 일기에 기록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과장하거나 진실을 억지로 둘러대는 위험성을 낳기도 할 것이다. 나를 둘러싼 일들에 대해서 무어라고 딱히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가질 때도 있을 것이고 말이다.

장 폴 사르트르(1905∼1980)의 초기작 ‘구토’는 사회에 유리된 외톨박이 주인공의 일기에 비춰진 인간 실존의 문제성과 그 예술적 극복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주변인들과 외부세계에 대해 느끼는 이유 없는 역겨움 때문에 주인공 앙트완느 로캉탱은 시시콜콜한 일기를 적어내려 간다.

체류중인 지방도시 부빌르의 부르조아적 문화에 대해 점차 조롱섞인 거리두기를 하게 되는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이유 없는 구토증의 경험이 심중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알아차릴 것 같다.
지난날 내가 해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느꼈던 것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일종의 달콤한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하였던가! 그건 조약돌 탓이었어. 확실히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었다. 그래 그것이야.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주인공은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 존재의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일까. 조약돌을 쥐고 ‘구토’를 느끼고, 파이프나 포크를 잡는 손을 통해서 다시금 역겨움을 느낀다. 사물과 타인의 존재를 인식할 뿐 아니라 자기 존재의 무상(無常)을 깨달았을 때마다 이 ‘구토’의 감정은 발생한다. 실존의 무의미성에 대한 회의적 통찰만이 주인공의 시시콜콜한 일기쓰기를 정당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프랑스 혁명기에 이중첩자였던 룰르봉 후작이라는 인물에 대한 조사 작업을 수행한다. 역사적인 한 인물의 행적을 통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실존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그는 가끔 카페의 여자와 만나 생리적인 욕구를 풀지만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인물이다. 그의 이유 없는 ‘구토’를 가라앉히는 유일한 것은 재즈 음악뿐이다. 실존적 회의에 빠져 절망하던 어느 날 저녁, 로캉캥은 심한 구토감을 느끼고 공원으로 달려가 벤치에 앉는다. 벤치 옆에 서 있는 마로니에 뿌리를 보며 사색에 잠기고 마침내 구토의 정체를 알게 된다.

마로니에 나무는 본질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실존한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인 것이다. 로캉탱은 룰르봉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고 파리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카페에서 마지막으로 재즈의 선율을 감상한다. 그리고는 결심한다. 글을 쓰는 것만이 재즈 음악가처럼 존재의 부조리나 절망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만이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일기의 마지막을 다음과 같이 포부를 적고 있다.
‘한권의 책. 물론 처음에는 지루하고 피곤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도, 또 내가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도 그로 인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권의 책이 완성되고, 내 뒤에 그것이 남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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