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레드오션 넘어 블루오션으로]“차별화된 상품 발굴 발전적 경쟁 이뤄져야”

홍순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6.16 13:10

수정 2014.11.07 17:38



지금 금융업계는 협소하고 제한된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물고 물리는 출혈경쟁이 난무한 핏빛바다, 레드오션 속에 살고 있다. 레드오션에서는 오로지 누군가 죽어야만 내가 사는 적자생존의 법칙만이 적용될 뿐이다. 하지만 돌파구는 있다. 블루오션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블루오션 전략은 신시장을 개척해 수익과 성장을 동시에 꾀하자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본지는 금융업계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안을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7회에 걸쳐 블루오션 시리즈를 연재했다.
시리지를 끝내면서 금융전문가들을 초청, 좌담회를 가졌다.

사회=이장규 금융부장

-윤증현 금융감독위원회장이 지난달 ‘승자의 재앙’을 불러오는 레드오션의 문제점을 지적한 뒤 이 말이 금융권의 화두가 됐다. 우선 주택담보대출의 출혈경쟁이 가장 심각한 것 같다.

◇박준규 HSBC 부대표=일부 국내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경쟁은 도를 넘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모든 은행이 그런 것은 아니다. 과당경쟁이란 각 금융기관이 내부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마케팅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다시 말해 순이익을 낼 수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은행마다 비용구조는 다 다르다. 따라서 각 은행이 자신들의 현실에 맞는 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은행의 성장은 크게 재무적 성장과 전략적 성장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재무적 성장은 점유율 상승과 같은 단기지표상 실적호전을 말하고 전략적 성장은 종업원�^소비자 만족도 등 장기에 이뤄지는 구조적인 성장을 말한다. 문제는 은행 경영자들이 재무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점유율 경쟁을 벌인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과당경쟁이 벌어진다. 최소한 5년 이상을 내다본 전략적 성장전략이 시급하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원=한국HSBC의 자산규모는 9조원, 국민은행은 200조원이다. HSBC와 국민은행이 똑같이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5%P 내린다고 가정했을 때 받는 충격은 자산이 20배가량 큰 국민은행이 훨씬 심하다. 따라서 외국은행들이 하는 전략을 국내은행들이 따라 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블루오션에 빠진다. 시장경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되게 마련이다. 다만 경쟁상대의 공격경영에 대비를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모든 은행들이 엇비슷한 상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 수는 없나.

◇정용화 금감원 부원장보=은행, 보험, 카드상품은 제조업에 비해 (상품을 다양하게 할) 선택의 여지가 적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얼마든지 색다른 상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기존의 상품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찾아보자는 것, 이것이 바로 블루오션의 본질이다.

◇박부대표=우리나라의 경우 외환위기라는 외부의 힘에 의해 금융업계의 판이 새로 짜여졌기 때문에 과거에는 해보지 않은 경쟁을 하면서 모두 다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크레디트뷰로(CB) 시장도 활성화하지 못해 신용대출도 정착되지 못했고 금리가 아닌 부대서비스의 차별화를 통한 고객 확보도 쉽지않은 상태다. 하지만 은행들이 금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차별화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다만 그 시기가 늦어지고 있을 뿐이다. 블루오션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손해보험업계는 가격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심각한 상황이라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

◇안택수 손해보험협회 전무=자동차보험 자율화 이후 손보업계는 지난 1983 이래 20년간 4조6211억원의 누적적자를 봤다. 업계간 과당경쟁이 화근이다. 우선 업계 관계자들의 마인드가 너무 시장점유율에 집착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1%의 점유율만 뺏겨도 비상이 걸리고 CEO가 바뀌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CEO들은 ‘어떻게 하면 점유율을 유지할까’ 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이는 보험료율 낮추기 경쟁으로 이어진다.

설계사나 대리점에 주는 수수료가 보험금액의 10%가 넘어가면 적자라는 걸 알면서도 업체들은 20%까지 지급하며 매출 올리기에 나서고 있다. 교통사고율이 너무 높다는 점도 손보업계 수익성 악화의 또다른 주범이다. 우리나라 교통사고율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연간 7000명에 달한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에 손보협회 차원에서 금감원에 감독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원장보=교통사고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범국가적인 교통법규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 영국의 경우 자전거 도로에도 신호가 있다. 자동차사고는 손보사의 경영에도 직결되지만 먼저 국민의 생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김연구원=보험권의 문제는 은행보다 구조조정이 더디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기업 인수합병(M&A)을 통해 상위 3∼4개 은행이 경쟁하는 체제로 전환돼 안정화됐다. 이들 상위 은행은 자산증가율이 5%대에 불과하지만 이익구조는 견실하다. 그러나 보험·증권업계는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승자와 패자가 판가름나고 이런 과정을 거친 뒤에야 발전적인 경쟁이 일어날 것이다.

◇박부대표=모든 금융사들간에 창의적인 마케팅이 절실히 요구된다. 미국 ING생명의 예를 들어보자. 이 회사는 미국의 한 지역에 사는 25∼35세 성인들이 바에서 맥주를 마실 때 맥주잔 받침에 ‘10잔을 먹으면 1잔 공짜, 단 보험에 가입할 경우’라는 광고문구를 게재했다. 간단한 광고지만 효과는 만점이었다.

또한 고객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영국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는 주택담보대출시 생애 처음으로 집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수익을 은행에 안겨주지만 또한 이탈률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들 초기 주택구매자들에게는 수수료 감면, 모기지론 할인 등의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그 결과 모기지상품 판매실적이 20%가량 확대되는 등 톡톡히 효과를 봤다.

◇김연구원=고객 데이터베이스(DB)는 은행의 자산이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은 고객 분석이 제대로 안돼 있다. 은행지점 창구에서 설문지를 돌리는 직원들은 ‘위에서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식’이라고 말을 하기 일쑤다. 이는 직원들의 동기부여가 안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내가 직접 겪은 일인데 미국 모 은행에서는 20달러를 줄테니 설문조사에 응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정부원장보=금융권에 가장 시급한 과제는 리스크 관리체제를 정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업계는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곧 발효될 바젤Ⅱ협약은 입체적인 리스크 관리를 요구한다. 예컨대 기존에는 신용리스크 위주로 관리해오던 것을 앞으로는 여기에다 시장�^운영리스크까지도 포함시켜야 한다.

◇사회=일부 리스크 관리가 뛰어난 은행도 있다. 리스크 관리는 또 카드업계의 화두로 부상했다.

◇심우엽 신한카드 부사장=일부 시중은행이 외환금융 위기를 무사히 이겨낸 원동력은 철저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카드사도 마찬가지다. 카드사태 무풍지대에 놓여있던 우량 카드사들은 고객관계관리(CRM)가 남달랐다. 각 고객의 신용도나 기여도 등을 면밀히 분석해 카드 발급에 신중을 기한 덕분이다.

앞으로 카드업계는 각 사마다 독특한 전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A카드사는 고위험 고수익 경영을, B사는 우량고객 중심의 마케팅에 집중하는 식으로 차별화될 전망이다. 그래야 서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아마 이것이 블루오션의 핵심이 아닐가 싶다.

◇김연구원=금융사 경영진의 임기가 너무 짧다는 점이 부실의 진앙지다. 카드사 위기가 좋은 예다. 카드론에서 부실이 발생해도 장부상에는 수 년 후에나 반영이 된다. CEO 입장에서 임기가 내년까지이고 부실은 3년 후에나 발생한다면 ‘일단 외형을 부풀리자’는 실적 위주 경영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처럼 경영자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이런 문제점은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해 감시해야 한다.

◇박부대표=삼성전자가 세계 1등 기업이 된 것은 글로벌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경쟁을 하다보니 좋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금융고객들은 글로벌 은행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은행들도 과감히 글로벌 경쟁을 벌여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세계 1등 은행이 나왔으면 좋겠다.

◇심부사장=카드업계가 과당경쟁을 벌인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카드사태 이전에는 모집인이 10만명이었는데 지금은 1만명에 불과하다. 작년보다 조금 늘긴 했지만 아직 과당경쟁 수준은 아니다. 부실을 털고 이제 영업을 해볼 수 있는 환경인데 지난 2년간 경쟁이 없다보니 과당경쟁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카드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카드업계 스스로 심사를 철저히 한다.

◇정부원장보=금감원의 설립목적은 금융회사와 소비자가 모두 잘 되는 것이다.
앞으로 업계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

/정리=홍순재기자 namu@fnnews.com
/사진=김범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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