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외국인 행장과 ‘人의 장막’/한민정기자

이장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6.30 13:28

수정 2014.11.07 17:11



요즘 은행권의 이목은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에 인수된 제일은행의 행보에 쏠려있다.

종전 대주주 뉴브리지캐피털과 너무 다른 SCB의 현지·토착화 전략은 이따금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6월30일을 ‘한국의 날’로 선포, SCB가 진출한 전세계 22개국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는 이벤트를 개최하고 한국 직원을 현지에 파견하는 등의 행사는 다른 외국계 자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우간다·미얀마·인도 등 그동안 한국문화와 한국금융에 생소했던 현지인에게 이 같은 행사는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뜻깊은 자리였을 것이다.

2일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펼쳐지는 ‘제일은행 패밀리 데이’도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구조조정의 칼바람 아래 이리저리 눈치보며 숨죽이며 지냈던 제일은행 가족의 노고를 위로하며 마음을 보듬는 뜻깊은 자리라 여겨진다.
SCB에서 파견된 경영진의 행보를 보면 왜 이 은행이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 같은 금융 불모지에서 성공을 거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SCB측 경영진과 제일은행 실무 부서간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아직도 엄연히 상존하고 있다. 경영진의 철학이 현업 부서에 전달되지 못하고 아직까지 경영진에만 머물러 있음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인터뷰 건도 그렇다. 행사장 등에서 필 메리디스 행장을 만나 SCB의 경영 행보에 관심이 많다며 인터뷰를 요청하면 ‘언제나 환영’이라며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함빡 지어보였다. ‘제일은행 패밀리 데이’에 취재 및 인터뷰 요청을 한 것은 달라진 은행 문화를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홍보실을 통해 돌아온 대답은 오는 8월까지는 그룹 차원에서 인터뷰를 사양한다는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행장 비서실에 다시 확인했더니 인터뷰 건은 행장에게 보고조차 되지 않았다고 한다. 행장의 의중조차 떠보지 않은 채 실무진에서 커트한 것이다.
이처럼 정상적인 조직에서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들이 줄지어 발생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국 시장에 큰 걸음을 내딛는 외국인 행장이 한국 물정과 한국 말에 서투르다는 이유로 인(人)의 장막에 둘러싸이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눈·귀 막힌 제일은행 외국인 은행장의 모습과 외국인 은행장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한 은행 사례가 오버랩돼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 mchan@fnnews.com 한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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