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유통

[이윤정의 패션 엿보기-주머니]남성양복 바지등에 18개이상…주머니도 ‘패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8.24 13:36

수정 2014.11.07 14:50



한복과 양복은 겉모양이나 제작 방법에서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주머니는 흥미로운 차이점 중 하나다. 서양 남성 양복의 경우 재킷·바지·조끼·와이셔츠까지 합치면 주머니 수가 18개를 넘는다. 반면 한복은 조끼를 제외하고는 주머니를 발견할 수가 없다. 이런 차이점은 서양의 수렵·유목문화와 우리의 농경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양의 수렵·유목문화에서는 이동생활과 수렵에 필요한 소도구나 양식을 담을 주머니가 필요했다. 반면 정착형 농경문화에서는 동네를 벗어날 일이 거의 없는 행동반경이 짧은 문화였다. 농기구를 평소 휴대할 것도 아니고 필요한 물건은 짧은 시간 안에 가져 올 수 있어 주머니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영남 산간 지방에 주머니 딸린 치마가 전해 오고 있다. 이는 물건을 담는 것이 아닌, 치마 속으로 손을 넣을 수 있게 옆구리 한쪽을 튼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부녀자들이 정절을 지키기 위해 패도(佩刀)를 감추고 꺼낼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패도구(佩刀口)라 불렀다. 또 속바지에 천을 덧댄 주머니는 그 모양이 호족(胡族)의 복장에 있던 것이라 하여 호(胡)주머니라는 이름도 있지만 원래 우리 민족에게는 옷에 부착된 주머니란 개념이 없다.

대신 한복은 허리에 차거나 들고 다닐 수 있는 독립된 주머니가 발달했다. 우리 문화를 요대문화, 소매문화라고도 일컫는데 이는 필요한 물건(부채·담뱃대 등)을 허리에 차거나 넓은 소매에 넣고 다녔기 때문이다. 경주 천마총에서 발굴된 금제 허리띠도 요대문화의 한 형태로 많은 장식이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다. 이는 과거 생활필수품을 손에 휴대하기 위해 허리에다 매다는 풍습의 한 형태를 보여준다.

종류도 향낭·침낭 등 다양하다. 때론 신분의 상하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때론 부귀·장생 등의 길상(吉祥)을 의미하는 문양을 수놓아 경사스러운 날 선물을 하거나 부적처럼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주머니의 유래는 정확치는 않지만 ‘삼국유사’에 경덕왕이 차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옷마다 주머니가 몇 개씩 달린 서양의 옷 문화는 ‘주머니 문화’로 불린다. 주머니 중 양복 재킷의 왼쪽 안주머니 밑에 작은 주머니는 과거 회중시계를 넣는 곳이다. 와이셔츠의 가슴 주머니는 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의 합리주의 영향에 의해 생겼다. 바지 주머니는 16세기 말에 처음으로 나타났다. 처음에는 몸에 밀착되는 남자 바지의 옆선을 트고 이곳에 작은 봉지를 만들어 달았는데 곧이어 바지와 봉지를 바지에 영구적으로 붙여 바지 주머니가 만들어졌다. 요즘은 주머니가 패션의 한 포인트로 곧잘 활용된다. 특히 남성패션에선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머니 속에 지갑·수첩·열쇠·손수건·라이터 등을 수두룩 하게 넣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최근에는 전자수첩·휴대폰·MP3 등 휴대품이 더 늘어났다.
그러나 주머니에 많은 소지품을 넣으면 옷의 형태를 변형시키고 타인에게 단정치 못한 인상을 주게 마련이다. 이럴땐 주머니에 이것저것 쑤셔넣지 말고 작은 손가방을 활용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이젠 주머니도 패션의 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