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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다리 이름을 알면 역사가 보인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09.21 13:42

수정 2014.11.07 13:57



‘다리 이름을 보면 청계천이 보인다.’

청계천은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600여년 전부터 백성들을 품고 흘렀다. 조선 시대의 청계천 다리는 모전교, 광통교, 장통교, 수표교, 하랑교, 효경교(새경다리), 태평교(마천교·오교), 오간수교, 영도교 등 9개가 있었다. 이같이 유구한 역사로 인해 청계천에 자리잡고 있는 다리중 상당수가 저마다 삶의 애환과 역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수표교=숙종과 장희빈의 첫 만남이 이뤄진 곳이지만 복개 이후 청계천 오염의 주범이라는 불명예를 입기도했다.

조선 태종 때 다리 주변에 소·말을 거래하는 우마전을 설치하고 배설물을 개천으로 흘려보냈다. 숙종은 영희전을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수표교를 건너다가 우연히 문 밖으로 왕의 행차를 지켜보던 장희빈을 보고 상사병을 앓던 끝에 그를 궁으로 불러들였다.

◇광통교=광통교는 한이 서린 다리다. 신덕왕후가 낳은 형제들 때문에 왕좌에 오르지 못할 뻔했던 태종은 신덕왕후와 그 자식들이 죽은 뒤에 광통교를 흙다리에서 돌다리로 개축하면서 신덕왕후의 능을 지키던 신장석(神將石)을 뽑아다 교각으로 썼다. 뭇 사람들의 발에 밟히며 고통을 받으라는 뜻이었다.

◇영도교=영도교는 단종이 왕위를 빼앗긴 뒤 강원 영월로 귀양갈 때 아내 송비(宋妃)와 이별했던 장소다. ‘영영 건넌다리’ 등으로 불린 이유다. 청계천 다리를 소재로 한 김별아씨의 첫번째 장편소설 ‘영영 이별 영 이별’의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오간수교=오간수교는 청계천 물이 원활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성벽에 만든 다섯 개의 아치형 구멍인 오간수문에서 유래됐다. 오간수교는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 나가는 오간수문 위에 놓여진 다리다. 죄인이 도성을 빠져 달아나든지 혹은 밤에 몰래 도성 안으로 잠입하는 사람들의 통로로 곧잘 이용됐다. 명종 때에는 임꺽정의 무리들이 도성에 들어왔다가 도망갈 때도 오간수문을 통해 달아났다.

◇장통교=중구 장교동(長橋洞) 51과 종로구 관철동(貫鐵洞) 11 사이의 청계천(淸溪川)에 있던 조선시대의 다리다. 이번 청계천에 만든 다리는 이름만 그대로 딴 다리로 세워졌다. 조선시대 5부 52방 가운데 하나인 장통방(長通坊)이 있던 자리라 하여 장통교라는 이름이 붙었다. 다리 근처에 긴 창고가 있었다 하여 장창교(長倉橋) 또는 장찻골다리라고도 하고, 장통교를 줄여서 장교로 부르기도 했다.

◇하랑교=중구 입정동(笠井洞)과 종로구 장사동(長沙洞) 사이의 청계천에 있던 조선시대의 다리를 이번에 복원했다. 다리 근처에 하랑위(河浪尉)의 집이 있어 하랑교라 하였고 다리 근처에 화류장을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 화류교(樺榴橋)로 부르던 것이 변하여 하리굣다리·하교(河橋)·화교(花橋)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효경교(새경다리·세운교)=다리 이름은 세운상가에서 딴 것이다. 세운교가 세워진 장소는 조선시대 효경교(孝經橋)가 있던 자리이다.
이 근처에 소경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맹교(盲橋)·소경다리라고도 하였는데, 세운상가 옆 아세아전자상가 동쪽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newsleader@fnnews.com 이지용기자

■사진설명=서울 광화문 인근에 설치된 청계천 분수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