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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원작과 다른 영화 낙관적 여운 아쉬워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11.02 13:52

수정 2014.11.07 12:34



흑사병의 병마에 가까스로 도망쳐 나온 인간 군상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식의 데카메론의 문학세계처럼 현대의 이야기꾼 귄터 그라스의 목소리는 위기의 순간에 더욱더 그 빛을 바라는 듯 하다.

많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쉘렌도르프의 영화화로 친숙한 소설 ‘양철북’의 내용은 영화 ‘양철북’의 내용과는 얼마간 차이를 보인다. 소설은 오스카가 정신 병원의 수용자로서 전후의 새로운 사회를 거부하는 것으로 끝나는 비관적인 종결을 지님에 반해, 영화에서는 단지 오스카가 새로운 사회로 향해 떠나는 종결장면은 웬지 어색하다.

원작 소설이 지닌 전반적인 회의의 분위기에 비춰보면 영화의 이러한 낙관적 여운은 작가의 의도를 자칫 호도할 위험이 있다. 소설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랑푸어 라베스베크의 소시민사회 에피소드들이 영화에서 표현되지 못하는 점, 즉 소설에서는 줄거리 연관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빵가게 셔플러부부, 채소상 그레프부부, 삼류음악가 마인, 헤르베르트 일가 등이 단지 영화에서는 엑스트라 정도로 취급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점은 아마도 현대 종합 예술의 결정판이라는 영예를 구가하는 영화 매체 자체가 지닌 한계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성 싶다.

소설의 주인공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소설의 화자로서의 오스카는 한편으로는 자신의 ‘선천적 총명성’과 ‘낮은 퍼스펙티브’를 통해 외부 세계에 대한 비판적 관찰을 하지만, 제1부와 제2부에서 나타나는 오스카의 궤적은 그 자신 나찌의 이데올로기에 현혹되어 ‘소시민 계층의 메가폰’ 임을 자처하고 있고, ‘북’으로 상징되는 군국주의에 몸을 맡긴 독일 소시민 계층의 화신일수도 있다.


제3부의 오스카는 이제 정상인의 길을 걷고자 하지만, 결국 정상인으로 성장이 또다시 중단되고 등에 혹이 달린 불구자가 된다. 전후의 서독사회가 진지한 과거청산에 실패함을 암시하는 오스카의 신체적 불구의 모습은 사회적 모순이 개인의 병으로 전이됨을 보여주지만, 그가 다시금 북을 드는 장면은 이제껏 공격성의 상징이었던 군국주의의 북소리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고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북소리가 아닐까. 더 이상 ‘총체성’에 대한 요구가 아닌 그라스식의 ‘디테일 리얼리즘’의 본질은 결국 너무나 빨리 잊혀지는, 그리고 뭇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해 버리는 현실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의 북소리에 대한 갈망인 것이다.


“한편 나는 북을 계속해서 칠 것이다. 그러나 이젠 기적같은 건 더 이상 요구하지 않으리라.”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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