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에서]원칙 어긋난 추경편성/이영규 정치경제부 차장

이영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11.11 13:53

수정 2014.11.07 12:18



지금 국회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의가 한창이다. 물론 5조1000억원 규모의 올해 추가경정 예산안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이번 심의 과정에서 정부의 그간 예산 편성 ‘난맥상’이 드러나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우선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추경편성이다. 지난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단 6차례만 빼고 해마다 추경이 편성됐다고 한다. 더욱이 세출 삭감 없는 추경편성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추경은 선진국에서도 보편화됐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다.

그러나 국민들은 빚을 내서 추경을 편성하는 정부 행태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정부는 올해 추경 편성을 위해 9조8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키로 했다. 국채 발행은 후대에 고스란히 부담으로 넘어간다는 점에서 더욱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의 빗나간 경제 전망과 이에 따른 세수 추계 차질도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말 민간연구기관들은 올해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3% 후반에서 4% 중반으로 잡았다. 환율과 유가변동이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유독 정부만 ‘정책적 의지’를 이유로 성장률을 5%로 고집했다. 이러다보니 5%에 맞춘 세입은 성장률 하락으로 결손을 초래했고 결국 추경을 편성하게 됐다.

환율 예측도 크게 빗나갔다. 정부는 올해 환율을 달러당 1150원으로 추산했다. 대부분의 연구기관들이 1100원대 안팎을 예상했던 것에 비해 50원 이상 높은 것이다. 목표 환율을 높게 책정함으로써 수입분 부가가치세가 2조원 이상 덜 걷히고 관세도 1조5000억원의 결손을 초래했다. 정부가 편성한 추경의 70%에 이르는 금액이다.

올해 세입 중 용도가 폐기되거나 기타 이유로 내년으로 넘어가는 이른바 불용 예산 처리도 매끄럽지 못하다. 정부는 올해 불용?이월 예산이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추경은 빚을 내서 끌어다 쓰면서 불용액은 내년으로 넘기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불용액을 세수 부족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40여개의 정부 부처를 일일이 조사해야 하는데 정부는 현재의 행정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의 ‘부적절한’ 세정도 도마 위에 올랐다. 관련 세법에 따르면 세계잉여금(예산을 초과한 세입과 예산 가운데 쓰고 남은 세출불용액을 합한 금액) 중 30% 이상은 해마다 공적자금 상환기금에 우선 출연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올해 세계잉여금 1726억원을 모두 추경에 편성했다. 세계잉여금이 적은데다 세수 부족에 따른 재원 확충이 시급하다는 게 ‘전용’ 이유다.

정부는 추경의 기본 원칙을 ‘망각’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시급성이 떨어지는 국방부 병영개선사업(3100억원)을 굳이 이번 추경에 편성한 것은 다른 ‘저의’가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사업을 내년으로 돌리면 국방부 예산 증가율이 10%를 훌쩍 넘어 ‘국방비 삭감’ 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어 이를 미리 잠재우기 위해 이번 추경에 편성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국민의 ‘혈세’로 꾸려지는 국가 재정은 엄격한 원칙과 더욱 더 정확한 추계 아래 운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민은 세금 폭탄에 허덕이고 국가재정은 결국 파탄날 수밖에 없다.


다행인 것은 정부가 내년에는 반복되던 추경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확한 성장률 예측을 위해 민간연구기관 등과도 적극 협의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도 다행이다.


내년 11월 국회 예산심의에서는 정부의 예산편성 난맥상이 올해보다 많이 개선되길 기대해본다.

/ ykyi@fnnews.com 이영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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