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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손을거치면 죽은나무에 새숨이 돋는다/목조작가 김영철씨

장승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5.11.16 13:53

수정 2014.11.07 12:12



그의 집은 작은 신천지다. 신이 흙으로 빚은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 넣었듯이 그는 쓰러진 고목에 힘껏 생기를 불어 넣는다. 세심하게 다듬어진 넓은 떡매, 줄기를 받침대 삼아 세워진 책꽂이, 심지어 부러진 가지를 엮어 만든 차 숟가락까지, 그의 집 곳곳은 1000년의 세월을 보낸 나무들의 깊고 아득한 숨결로 가득차 있다.

목조각가 여목(如木) 김영철씨(47). 그는 수명을 다하고 폐기된 나무들에게 이 세상에서 해야할 마지막 역할을 선택해 주고 있다. 김씨가 나무와 함께 한 지는 20여년. 23세이던 지난 1983년 우연히 서울 안암동 한 조각상에서 만난 한 작품을 접하면서 나무와 함께 사는 인생을 자연스레 시작한다. 목 조각가 정전기 선생으로부터 수개월간 사사한 후 독립한 그는 지금까지 4000여점이 넘는 작품들을 배출했다.


평범했던 그가 나무와 함께 하는 일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편안함 때문이에요, 나무를 보면 항상 편안하거든요. 세상에 쌓인 모든 속박을 나무를 통해 해소할 수 있으니까요. 작품 역시 편안한 마음을 갖고 제작한 것들입니다.”

그의 말대로 경기도 광주에 자리잡은 그의 거처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색다른 공간이다. 그가 나무를 소재로 꾸며놓은 다양한 가구와 액서세리 등을 바라보노라면, 인간과 나무가 흙에서 자란 공생적 의지가 살며시 스며든다.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나무 촛 받침대부터 당나무 껍질을 얇게 썰어 만든 한지 창 커텐까지 이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는 미적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작품이 이쁘게 보일수만은 없는 일. 작품 속에는 만드는 이의 피와 땀 그리고 열정이 함께 녹아있기 때문이다. 목조각가는 사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직업이다. 벌목을 ‘죄’로 치부했던 과거도 있을 뿐더러 나무를 귀히 여기는 민족정서에 차마 도구를 대는 것은 금기와도 같았다. 자연스레 나무를 만지는 그의 손길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령 대추나무같은 것은 질감을 그대로 살리려 노력하지요. 대부분의 나무들은 인공미를 가미하면 작품성이 떨어지거든요. 목조각은 세심한 손길을 필요로 합니다.”

세심하고 정밀한 작업임에도 나무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특색을 갖는다고 김씨는 말한다. “주목은 여성 피부와 같아요. 곱지만 풍파에 예민하고 민감하죠. 대추나무는 질감이 가장 좋아요. 되도록이면 문양을 넣지 않지요. 느티나무는 색깔이 이쁘고 우직한 성품을 담고 있어요. 대추나무와 달리 문양을 넣으면 기막힌 작품이 나와요.”

나무를 선택하는 특정 시기도 있다. 선택한 나무들은 대부분 해충과 벌레들이 거의 사라진 5∼12월 경에 벌목을 한다. 그외 기간에 벌목할 경우에는 해충들이 기생해 약품처리를 해야하는 부담이 있다.

“나쁜 재료들을 쓰면 흥미가 없어요. 그렇다고 쓸만한 나무만을 고르지는 않죠. 수명을 다한 고목에서부터 벼락 맞은 나무까지 모든 것이 제 작품의 재료들이지요. 버려진 것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심정으로 조각에 임합니다.”

그가 한 달간 만들어내는 작품은 평균 8점 정도. 6점은 외부에서 부탁한 작품들이고 자신이 스스로 구상한 작품은 2점 정도다. 일일이 손으로 해야하는 작업이기에 내놓는 작품수는 그리 많지 않은 편. 최근 들어서는 애호가들이 생겨나 주문이 크게 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작품 하나를 만드는 시간은 꼬박 하루가 걸리지만 벌목, 배송, 재료 선별 등에 따라 걸리는 시간은 각기 다르다.

자택에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가을 골짜기 언덕에 소복히 자리잡고 있다.
하나의 작품으로 변신하고자 준비된 작품들은 노란 은행잎들을 수북이 덥은 채 자연의 온기를 맡고 있다. 그가 도구를 들고서 나무를 다듬는 소리는 골짜기 저편으로 아득한 1000년의 시간을 전해주는 듯하다.
자연의 은은한 품안으로 안착한 만추의 정취를 그의 작품속에서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선한 목수의 따스한 손길은 좀처럼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 sunysb@fnnews.com 장승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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