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 중에 와인을 빼놓을 수 없다.
명성답게 프랑스는 늘 세계 최고의 와인 수출국이다. 그러나 최근 국제 와인시장에서 프랑스의 지위가 위협 받고 있다. 프랑스가 최고급 와인시장에서는 여전히 독보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으나 전체 와인시장에서 비중이 가장 큰 중저가 와인시장에서는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국제 와인시장의 계속적인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와인 수출은 지난 2002년을 정점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전통적인 유럽의 와인 수출국들은 꾸준한 성장세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더 주목할 것은 미국, 뉴질랜드, 호주 등 이른바 ‘신세계’ 와인들이 무서운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수출 감소 탓에 지난 2005년 한해 프랑스 와인 생산업자들의 농가 소득은 36%나 감소했다. 상황이 이쯤되자 여기저기서 특단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프랑스 와인에 적용하고 있는 원산지 명칭 통제체계(AOC)를 대폭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원산지 명칭 통제란 지역별로 엄격한 와인 생산 조건을 규정해 놓고 이를 충족시켜야만 라벨에 원산지 이름이 들어간 AOC 표기를 허용하는 것이다. AOC는 원산지 통제를 뜻하는 프랑스어인 Appellation d’origine Contr�sl?e의 약어다. 예를 들어 메독은 Appellation M?doc Contr�sl?e라고 표기하게 된다. 이 통제에는 지리적 경계와 명칭, 사용되는 포도의 품종?재배 및 숙성 조건 등을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와인은 라벨 표시에 따라 서너 단계로 질을 구분할 수 있는데 그 중 최상을 차지하는 이 AOC 급 포도주는 2004년 현재 프랑스 전체 포도주 생산량의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
원산지 통제체계는 지난 1935년 제정된 이후 와인의 품질 저하를 막고 지역 이름의 남용을 제한함으로써 지역의 고유한 제조 방법을 지키며 프랑스 와인이 세계 최고의 품질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 일조해 왔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국제 경쟁에서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프랑스 전역에 440여개의 AOC 와인이 존재하는데 종류가 너무나 많고 질 또한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AOC 자체는 지역의 고유한 제조 방법을 강제하고 있을 뿐이라서 몇몇 유명한 AOC를 제외하고는 AOC 표시 자체가 질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프랑스 와인은 소비자들에게 어떤 신호도 주지 못하면서 친숙해지기 어렵다고 느끼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점은 특히 국제적으로 지명도가 높지 않은 AOC 와인들이 경쟁해야 하는 중저가 와인시장에서는 더욱 더 큰 핸디캡이 된다. 간결하고 깔끔한 라벨, 계속적인 품종 및 주조방법 개량, 대규모 마케팅이 결합된 호주, 미국 등의 와인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90년대에는 세계 와인시장이 소량 생산하는 와인들을 찾아나서는 게 유행이었고 이런 시장 추세를 타고 프랑스 와인들이 그 다양성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시장 추세는 단일한 이름이나 마크로 생산을 대규모화하고 마케팅에 힘을 쏟는 추세로 바뀌었다.
이러한 시장 추세에 고무돼 AOC 체계를 수정하라는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지명도 높은 고급 AOC 와인 생산업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오히려 지난 2004년엔 AOC를 관할하는 프랑스 원산지 명칭 협회에서는 최고급 AOC를 더 늘리는 방향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동안 일부 중저가 AOC 와인 생산자들은 이미 시장 추세에 따르는 방향으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생산지역인 보르도지방의 대표적인 중저가 와인인 프르미에르-코트-드-보르도, 코트-드-블라이, 코트-드-부르를 포함한 5개 AOC 포도주 생산업자들은 오는 2007년 수확분부터는 코트-드-보르도라는 단일 AOC로 시장에 출하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이 프랑스 와인 체계를 자생적으로 개편하는 촉발제가 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AOC 와인보다 저급으로 취급되는 일반 지방와인(Vin de Pays?VDP) 급들의 약진이다. VDP급 와인들은 AOC에 비해 품종 개량과 숙성 방식에 대한 제약이 덜한 점을 이용, 시장에서 원하는 맛으로 꾸준히 품질을 개선해 왔다. 라벨 또한 ‘신세계’ 와인들처럼 포도 품종을 앞세워 표기하고 마케팅에 주력하는 등 ‘신세계’ 와인들의 공세에 잘 대응해나가고 있다. 양질의 VDP급 와인들이 많은 랑그도크 지방은 프랑스 최고의 포도주 생산지역인 보르도를 능가하는 최대 와인 수출지역이 됐다.
/ junghyun@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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