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부터 오는 2010년까지 19조3000억원을 투입해 세계 최저 출산율(1.16명)을 선진국 평균 수준(1.6명)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한 저출산 대책에는 몇 군데 허점이 보인다. 사안의 시급성은 인정하지만 너무 서두른 듯한 인상이 짙다.
먼저 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의 문제다. 재원을 확보하기도 전에 먼저 일을 벌이는 현 정부의 잘못된 관행이 이번에도 되풀이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임시투자세액에 대한 비과세·감면을 축소하고 재산세 과표를 인상해 수조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보건복지부가 재경부·행자부·기획예산처 등 3개 부처와 ‘합의’했다고 발표한 것도 미덥잖다. 오는 18일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연설을 앞두고 돈줄을 쥔 부처와 서둘러 이견을 봉합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고령화, 나아가 국민연금 문제 등과 밀접히 연결돼 있는데 이번에 저출산 대책만 발표한 것도 좀 생뚱맞다.
저출산의 근본 원인이 보육과 교육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여성·교육·노동부 등 그야말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행여 저출산 대책을 정치 일정에 맞춘 정권 차원에서 접근하는 건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저출산 대책은 결국 세금을 더 걷는 형태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지나친 정부 개입이 특히 기업에 대한 과도한 세 부담으로 이어져 성장 동력을 갉아먹어서는 곤란하다. 이런 점에서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민간 자율’ 방식을 지원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사원복지 향상을 위해 사내 보육시설을 확충하고 불임휴직제를 도입하는 등 출산 장려 정책을 펴고 있다.
기업에 짐을 지우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정부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자발적인 참여를 확대하는 현명함을 보여야 한다. 이렇게 하면 귀중한 세금도 아끼고 원하는 효과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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