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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뒤라스의 연인]영화로도 흥행한 작가의 자전적 작품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01 14:19

수정 2014.11.07 00:16



마르그리뜨 뒤라스(1914∼1996)는 전후 프랑스 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여류작가들 중 한사람이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태생의 뒤라스는 식민지에서 보낸 유년기의 기억과 프랑스에서 체험한 제2차 세계대전을 특유의 자서전인 글쓰기를 통해서 재구성해 내고 있다.

그녀의 자서전적 글쓰기의 중심적 주제는 이루지 못한 사랑과 죽음의 문제이며, ‘히로시마 내사랑’(1960)과 ‘연인’(1984)과 같이 원작의 영화적인 성공이 그의 국제적 성가를 높여주었다. 반복된 알콜 중독 치료와 여러 차례에 걸친 입원으로 점철된 말년의 뒤라스의 문학적 삶은 그녀의 가장 주요한 작품인 ‘연인’ 속의 화자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세파와 알콜이 남긴 깊게 패인 주름과 허연 백발의 이름없는 화자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50여년전 유년기의 기억은 시간적으로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너무나 낯설다. 화자는 메콩 강을 건너는 페리 위에서 흐르는 메콩강을 주시하는 자신의 유년기적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과거사를 객관적으로 재구성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관점에서 주관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인 것이다. 이제 갓 15세를 넘긴 페리 위의 소녀는 어머니가 물려준 소매 없는 생사 원피스와 처음 신어보는 뾰쪽 구두, 그리고 챙달린 남성중절모를 쓴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 시대에 식민지에서 어떤 여성도 그런 남성 모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화자는 뾰족구두와 다 헤져가는 생사원피스와 마찬가지로 이 남성 중절모가 자신의 유년기의 기억에서 어떤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화자의 유년기의 모습이 주는 일탈적인 형상은 화자가 ‘유년기의 오점’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식민지의 화교 청년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과 무조건적인 성적 탐닉의 스토리를 내포하고 있다.
소매없는 생사 원피스, 뾰쪽 구두로 상징되는 어른이 되고자 하는 15세 소녀의 도강(渡江)은 소녀의 세계에서 어른들의 세계로 넘어가는 소녀의 열망을 표현하고 있을 터이며, 남성중절모로 이해되는 남성에 대한 관심은 뾰쪽 구두와는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울리지 않는 만남을 접고 프랑스로 돌아가게 된 소녀는 열두 살 많은 중국청년을 진정 사랑했음을 깨닫고 그를 잊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수십년의 세월이 흐른 후 그의 전화를 받게 된다.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며, 죽을 때 까지 사랑하고 있다는.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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