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먼저 희망을 보고 싶다/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06 14:20

수정 2014.11.07 00:10



한국어에는 유독 가까운 미래를 나타내는 고유의 말이 없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은 순수 한글이지만 내일(來日)은 한자어다. 그러나 먼 미래를 나타내는 어휘는 매우 다양하다. 모레나 글피 또 그글피 등은 순수 우리 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의 삶이 현재적으로 늘 고달팠기 때문에 당장 그 다음 시간에 대한 희망을 갖기가 어려워 장차 올 먼 훗날에 대한 소망밖에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린다.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먼 미래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장기 경기 침체와 경제 양극화, 그리고 고용 불안 등으로 고달픈 현실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먼 미래의 소망이나마 찾아보려는 노력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최근에 들려오는 소식들은 희망보다는 갈수록 험난한 삶을 살아야 할 것 같은 비관적 생각에 빠져들게 한다. 정부가 늘어나는 재정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세금을 거두어들일 궁리만 한다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확산되면 국민들은 누구와 무엇을 위해 힘들게 일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 것이다.

더욱이 수많은 세수 확대 방안 중에서 그 동안 서민들의 소득 보전을 위해 정부가 그나마 시혜를 베풀던 세제부터 폐지하겠다고 느닷없이 정책 당국이 으름장을 놓으면 현실의 고통감은 더욱 가중될 뿐만 아니라 앞날마저 암울하게 만든다.

정부가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민들의 고통 분담을 바란다면 먼저 국민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꿈과 비전을 선사해야 한다. 한국보다 훨씬 오랫동안 경기 침체 국면에 빠져 있는 일본의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최근에 발표한 ‘2030 비전 구상’은 온통 희망에 차있다. 미래 환경 변화에 적응한 일본의 새로운 사회상이 제시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이전과 다른 차원의 정책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25년 후 자국의 모습을 크게 세 가지로 그려놓았다. 세계적으로 매력을 지닌 문화 창조 국가,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영위하는 수명 80세 사회 그리고 작은 정부의 구현이 그것이다. 창의성 개발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얻고 축복된 노령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인데 정부 역할은 크게 줄이겠다는 것이다. 노령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재정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상식을 가장 노령화가 진전된 일본에서 이를 뒤집는 역발상이 제시된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일본이 취하려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생산성 향상과 소득 증대의 선순환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다. 후세대들의 창조성을 높일 수 있는 교육 개혁, 시장 경제 원리에 의한 효율적 자원 분배, 과학 기술 혁신 유도 등이 이를 위한 주요 정책 수단이다. 둘째는 글로벌화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세계적인 재화와 인적 자원의 교류 시스템 구축, 주변국과의 경제 통합 등 실용주의적인 국제 관계 형성, 환경 문제와 같은 세계 현안의 해결에 적극 동참할 예정이다. 셋째는 민간 주도의 공공 서비스 제공을 확대해 이른바 ‘민간 참여에 의한 풍요로운 公’을 실현하는 것이다. 1서비스 1행정 기관화와 공공 부문의 민영화 등을 통해 정부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는 한편, 개인 기부를 활성화하고 교육이나 지역 개발 등에 사회 투자 펀드의 활용을 촉진한다는 것이 이를 위한 일본의 선택이다. 특히 일본은 공공의 풍요로움을 누리기 위해 법치주의가 확립돼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의 ‘2030 비전’은 정부가 미래 염려와 고통의 짐을 다 짊어지겠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 잘 살 수 있는 능력과 가치관 그리고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 데만 정부가 힘을 쏟겠다는 의지로 평가된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비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세가지 점을 정부나 정치인들은 파악해야 한다. 첫째는 국내 경제 문제의 근본 원인은 경제적 성장 잠재력의 약화 측면뿐 아니라 정치 사회적 지나친 갈등 구조에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둘째는 세계적 대세가 시장 경제의 확산이요 민간 경제의 활력 유도에 있음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셋째는 한국 고유의 정책 자원을 발견하는 것이다.
빈곤층과 고령화 등에 대비하기 위해 재원 조달에 힘에 겨운 공적 사회 안전망 확충에만 매달리지 말고 우리 고유의 대가족 제도와 같은 공동체 문화의 복원 등도 정책 수단으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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