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짜증나는 해외송금…500달러 보내는데 호적등본까지 요구

한민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06 14:20

수정 2014.11.07 00:10



#1. 일본에 물건을 수출하는 소규모 무역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45). 김씨는 최근 주거래 은행으로부터 지난 2004년부터 2005년까지 500달러 이상 해외에서 송금받은 내역에 대한 확인서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500∼1000달러 규모의 ‘샘플 거래’를 자주했던 김씨로서는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서류를 작성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김씨는 은행 직원으로부터 수출입 거래를 입증하는 계약서를 제시하라는 요청을 받자 ‘정식 계약이 아니라서 e메일로만 의사소통을 했고 이미 2년 전이라 e메일도 남아있지 않다’고 답변했으나 은행 직원은 ‘금감원에서 지시한 사항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2.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조카를 둔 이모씨(50)는 형의 사업이 어려워지자 형 대신 조카에게 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몇차례 송금했다. 은행에서는 이씨에게 해외 송금의 목적과 돈을 수취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고 확인서 작성과 이씨와 조카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호적등본을 떼올 것을 요구했다. 이씨는 “조카에게 돈을 보냈을 뿐인데 호적등본 등 개인 정보를 이렇게 많이 요구하는 건 문제”라고 불만을 토했다.


금융감독원이 해외 부동산 불법 취득 전면 조사 과정에서 시중 은행들에 지난 2004∼2005년에 500달러 이상 해외에서 송금을 받거나 해외로 송금한 고객에 대한 지나친 개인정보를 요구, 물의를 빚고 있다.

각 시중 은행들은 500달러 이상의 당행?타행 송금에 대한 자료를 모두 금감원에 제출하는 한편, 송금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거래에 대해서는 금감원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특히 유학생 송금은 금감원이 가족임을 입증하는 주민등록등본, 친인척간 송금은 인척 관계를 증명하는 호적등본 등을 제출토록 하고 해외 취업시 받았던 돈은 취업 사실 입증 서류까지 내도록 요구하자 은행 고객들은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또 은행들도 막대한 서류 처리에 난감해하고 있다.

금감원은 매달 정기적인 송금거래 중에서 해외 부동산에서 월세를 받거나 대출을 갚는 경우가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앞으로 500달러 이상 송금시에 증빙 서류를 내도록 하면 되지 이미 2년 전의 송금 사실을 놓고 이제 와서 증빙서류를 내놓으라고 하니 은행 직원들은 직원대로 고객에게 전화하느라 애먹고 고객들은 고객대로 과거 연락처를 다 확인해 전화를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요 프라이빗뱅킹(PB) 고객의 경우 자기를 믿지 못하냐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아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일부 은행들은 고객들의 불만이 빗발치고 업무량도 많아지자 금감원에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뾰족한 답변은 듣지 못했다.
더욱이 금감원은 제도 시행과 관련해 공문을 보내지도 않은 채 비공식적으로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해 은행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에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해외에 부동산을 취득해서 월세를 받거나 모기지론으로 매달 송금을 하는 경우를 찾아내기 위해서 조사를 실시한 것”이라며 “외국환거래법상 관계자에 대해서 거래관계 서류를 징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고객이 아닌 빈번한 송금 고객만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자세한 설명이 있으면 호적등본 등의 서류 요청은 하지 않는다”면서 “수집된 개인 정보도 절대 외부로 유출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 mchan@fnnews.com 한민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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