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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의 꿈이라지만 지점장은 고달프다]실적 나쁘면 조사역 ‘뒷방신세’ 일쑤

한민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10 14:20

수정 2014.11.07 00:05



시중은행의 김모 지점장(45)은 ‘30대 지점장 발령’이라는 뉴스를 볼 때마다 한숨만 나온다. 한참 은행이 잘나가던 시절에는 지점장이 되면 자가용에 운전기사까지 나오고 정년까지 무난하게 지냈지만 요즘은 파리 목숨이 따로 없다는 생각에서다.

외국계 기업에서 영업 노하우를 쌓은 30대 후배들은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는데다 지점장이라도 실적이 나쁘면 곧바로 조사역 등으로 뒷방 신세가 되는 통에 쉴 틈도 없다. 지점장실에 앉아서 VIP고객을 기다리는 것은 옛말이고 하루종일 운전하고 돌아다녀도 이렇다할 실적이 없으면 허탈하기만 하다.

실적이 나쁘면 언제든지 퇴출되는 환경으로 바뀌면서 은행원들의 ‘꿈’이라는 지점장이 더욱 고달파지고 있다.

경영진은 ‘30대 지점장’이라는 충격 요법으로 보수적인 은행 조직을 뒤흔들어놓고 영업 실적이 나쁘면 언제든지 현업에서 퇴출시켜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지점수는 한정되어 있고 승진을 바라는 은행원은 적체되어 있어 실적에 목을 메지 않으면 지점장에 간신히 됐다고 해도 자리 보전이 쉽지 않다.

IMF 위기 이후 ‘실적 만능’ 풍조가 확산되면서 일부 은행이 30대 지점장을 배출했지만 여전히 50대 지점장이 은행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다. 우리은행은 가장 젊은 지점장이 만 44세이며 만 51세의 지점장이 119명으로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최고령 지점장은 만 54세다. 외환은행은 만 41세가 제일 젊은 지점장이고 최고령 지점장은 57세다. 가장 분포도가 높은 나이는 49세로 88명의 지점장이 속해있다. 하나은행은 단 1명의 지점장만이 30대이고 40대 지점장이 346명, 50대 지점장이 143명이다.

문제는 지점장 분포가 가장 많은 나이대에서 지점장에서 일반 직원으로 갑자기 강등당하는 인원도 가장 많다는 현실이다.

한 시중은행의 경우 대부분의 지점장들이 46∼51세 정도의 연령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사역으로 발령나 현업에서 가장 많이 떠나는 연령대도 지점장 연령대와 비슷한 49∼52세다. 실적이 좋은 사람은 지점장으로 남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바로 퇴출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은행 직원은 “은행 입장에서야 30대 지점장이 멋지게 보이겠지만 40∼50대 가장은 어디로 가라는 건지 답답하다”면서 “30대 지점장은 고사하고 40대 중반에 조사역 등으로 뒷방 신세가 돼서 은행을 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점장이 실적을 위해 아래 직급 직원에게 부탁하는 일도 잦다. 한 시중은행의 PF 담당자는 “하루 최소한 1명 이상의 지점장이 찾아와 고객들의 계획안을 들이밀며 검토해달라고 하는데 수익성이 높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라면서 “PF의 경우 1건만 성사되도 금액 자체가 크다보니 지점장들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발벗고 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뛰어난 실적으로 30대의 나이에 지점장을 달았어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30대에 지점장이 된 한 은행원은 “일찍 승진한 만큼 일찍 나가게 될 것같은 두려움이 한동안 있었다”면서 “주변의 기대로 인해서 더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영업 우수상을 여러 차례 받은 한 지점장은 영업 시간에는 은행에 있지 않다. 고객들을 일일이 방문하고 상담하고 나서 지점 영업시간이 끝나면 그때서야 지점으로 돌아와 직원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서류 업무를 처리한다.

그는 “영업 시간중에 오는 고객들은 내가 아니라 직원들도 다 처리할 수 있는 것이고 고정적인 수익이므로 신규 고객 발굴을 위해 돌아다닌다”면서 “고객들의 온갖 경조사는 다 쫓아다니고 있는데… 사실 모든 지점장들이 다 그렇죠”라며 말끝을 흐렸다.


/ mchan@fnnews.com 한민정기자

■사진설명='영업실적 지상주의'로 인해 은행 지점장들은 지점에 앉아 있을 틈조차 없을 정도로 분주하다. 신규고객을 발굴하려면 밤낮없이 발로 뛰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산해 보이는 한 시중은행 객장의 이면에는 이같은 지점장들의 애환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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