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석칼럼]‘우리의 파시즘’/방원석 논설실장

방원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14 14:20

수정 2014.11.07 00:03



줄기세포 조작파문이 쓰나미처럼 우리 국민을 덮친지 3개월째. 초미의 관심사인 조작 진실규명이 검찰의 마무리 수사로 초읽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이번 파문의 행간에 숨어있는 사회적 의미가 참으로 미묘하다는 일부 식자층의 해석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파장 또한 과소평가할 수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말인즉슨, 요즘 항간에서는 황우석 파문을 놓고 우리사회가 파시즘의 직전단계까지 온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의 일단이다. 최근 수년간 우리 국민이 보여준 집단적 열광주의, 여기서 비롯된 맹목적 국수주의가 마치 지난 1930년대 독일국민의 파시즘에 탐닉한 사회현상과 다를 바 없다는 해석이 그것이다.

월드컵 축구대회 당시 범국민적인 열광의 도가니속으로 빠져들었다든가, 황우석의 줄기세포에 열광했다든가 하는 우리사회의 몰입주의가 마치 나치시대의 파시즘적인 사회병리현상과 꼭 빼닮았다는 것이다.
수년간 우리사회를 이끌어온 열광주의, 영웅주의가 바로 부지불식간에 우리 마음속 깊이 생성된 파시즘의 부산물이란 얘기다. 물론 해몽에 불과하지만 새겨들을 구석도 적지않다.

‘황우석파문’ 행간 읽어야

‘우리의 파시즘’이 싹트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다. 너나 할 것없이 외쳐댄 ‘대∼한민국’의 함성은 정체성, 계층, 나이를 뛰어넘어 전국민을 하나로 묶는 기폭제가 됐다. 이는 당시 애국만능주의로 흐르면서 신세대 국수주의로 변질됐다.

이런 사회분위기는 월드컵대회 직후 발생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고로 더욱 증폭됐다. 대규모 촛불추모집회로 이어지고 급기야 반미(反美)정서로 이어졌다. 그 여파가 그해 12월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노빠’(노무현 대통령 당선)현상으로 직결됐다.물론 한때 이런 가정과 분석은 항간에서 꽤나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유포되기는 했다.

그후 국가적인 이벤트가 사라져 공허해진 국민의 가슴속으로 파고든게 ‘황우석 신드롬’이다. 대중과 언론은 앞다투어 황우석을 영웅으로 만들었고 우상으로 받들었다. 우리 국민은 그를 통해 비전을 갖고 꿈을 심었고 때로는 우월주의에 젖었다.

황우석은 권력이었다. 감히 황우석에게 비판하거나 딴지를 거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일이고, 허용될 수도 없었다. 파시즘적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것은 이때쯤이다. 이 와중에 그만 우상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우리사회를 지배해온 우상이 무너지면서 허무주의가 판을 쳤고 우리 국민이 정신적 공황을 겪게 된 것은 당연하다.

우리 국민이 왜 집단적인 열광주의에 몰입했는가. 그 이유는 극심한 사회혼란과 경제난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 많다. 그 발원지는 외환위기로 지목된다. 이런 배경은 지난 1930년대의 나치시대에 파시즘이 출몰한 사회적 분위기와 흡사하다. 제1차 세계대전후 극심한 사회혼란과 대량 실업속에서 독일 국민들은 스스로 절대권력(영웅 및 이벤트)에 신탁하려 했고 구원에의 의지에서 영웅이란 ‘구세주’(아돌프 히틀러)를 찾게 됐다.

경제파탄과 사회혼란을 먹고 산게 바로 파시즘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파시즘은 있었다.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이탈리아 파시즘의 발원도 따지고 보면 경제난으로 빚어진 것이다.

경제난·사회혼란 경계를

우리사회도 외환위기, 민주화, 세계화 과정을 거치며 경쟁은 더욱 격화됐고 생활은 팍팍해졌다. 중산층이 대거 몰락하고 빈곤층이 양산됐다. 우울증에 걸린 우리사회는 우리 자신을 이끌어줄 구세주, 영웅, 사회적 이벤트가 필요했고 여기에 빠져들면서 파시즘적인 대중심리가 싹텄다는 추론이 가능해졌다. 일리있는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요즘같은 대명천지에 파시즘국가가 될리가 있겠는가. 다만 우리 국민이 경제적 피폐, 사회혼란을 계기로 심정적으로 파시즘적인 사회분위기에 동조하거나 조성해온 것은 아닌지 성찰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뜬금없이 검증되지 않은 영웅을 만들어내고 이벤트만 벌어지면 푹 빠지는 국민정서는 지극히 불안하고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경제파탄, 사회혼란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국민이 자칫하면 이런 파시즘적인 쓰나미에 쉽게 휩쓸릴 수 있어서다.
파시즘적인 사회분위기를 막으려면 경제를 살리는게 가장 중요하다. 사회가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지 않도록 중산층을 복원해야 한다.
최근 몇년간 우리사회에 횡행한 파시즘적 분위기는 경제난, 이에 따른 자아상실에서 비롯된 필연의 결과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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