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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유렵연합(EU)’ 稅 가능할까/안병억 런던특파원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16 14:21

수정 2014.11.07 00:00



최근 유럽연합세 도입이 논의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럽연합(EU)이 회원국 시민들로부터 세금을 징수, 세수의 안정을 확보하고 시민들에게 친근한 유럽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현실적으로 채택되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의 정책결정구조와 과거의 예를 살펴보자.

유럽연합 예산은 수입 측면에서 ‘자체 재원(Own Resources)’이라고 불린다. 유엔 같은 국제기구는 대부분 회원국의 분담금이 예산을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어느 정도 재정적 독립성을 보유하고 있다.


공동 농업정책과 공동 통상정책의 채택으로 비회원국으로부터 수입되는 농산물과 공산품에 대해 회원국이 단일한 관세를 매긴다. 이 관세가 유럽연합 예산으로 사용된다. 또 회원국이 합의한 물품과 서비스에 대해 부과하는 부가가치세의 0.5%가 예산으로 납부된다. 회원국마다 부가 세율이 다르기 때문에 특정 물품과 서비스에 대해 이론적으로 합의한 부가세로 실제 부가세율은 아니다.

그러나 비회원국에 대해 부과하는 관세는 우루과이 라운드 등 다자간 무역협상을 통해 상당히 인하됐다. 따라서 예산에서 비회원국 관세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줄어들었다. 회원국은 늘어나고 돈을 쓸 곳은 많아졌기 때문에 지난 88년 회원국 분담금 제도를 도입했다.

각국이 국내총생산 규모에 따라 분담금을 내게 되며 현재 25개 회원국 가운데 독일이 최대의 경제 대국이기 때문에 독일이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고 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유럽연합 예산의 구성을 살펴보면 회원국 분담금이 74%를 약간 웃돌며 부가세가 14%, 비회원국의 수입품에 대해 매기는 관세는 11%를 차지하고 있다. 중기 예산안 편성 때마다 회원국간에 공개적인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회원국의 분담금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담은 오는 2007∼2013 중기예산안을 두고 회원국 수반들이 이틀이 넘는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예산 규모와 정책별 씀씀이 등에 대해 회원국마다 입장 차가 컸기 때문이다.

폴란드나 체코 등 새로 가입한 동구권 국가들은 가난한 회원국에 지원해주는 지역정책 등에 더 많은 돈을 쓰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 농업정책 예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동 농업정책의 최대 수혜자인 프랑스와 아일랜드 등의 부유한 기존 회원국은 이를 달갑지 않게 여겨 왔다. 지난 번의 중기예산안(2000∼2006)에 비해 예산이 증가하면서 분담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올 상반기 유럽 정상회담과 각료이사회 순회의장국을 맡은 오스트리아가 유럽연합세 도입을 제안했다. 유럽연합 예산에서 분담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2가 넘어 국제기구와 비슷한 입장이다. 따라서 유럽연합이 단순한 국제기구가 아님을 강조하고 회원국간에 누가 돈을 더 지불하고 받아갔는가라는 되풀이되는 논쟁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재원을 도입하자는 주요 내용이다.

제안된 새로운 재원 중의 하나가 단기간 금융거래와 항공, 항만 이용에 세금을 부과하고 이를 유럽연합의 새로운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안이다. 그러나 금융가 ‘더 시티’를 보유해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는 영국은 이 제안에 분명하게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왜 금융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에 저해가 되는 새로운 재원 채택을 찬성하겠는가. 새로운 재원 도입은 회원국간의 만장일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한 회원국이 반대할 경우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

지난 88년 당시 자크 들로르 유럽연합집행위원회 위원장도 이와 유사한 새로운 재원 방안을 거론했다. 그러나 회원국들의 반대로 이 안은 제대로 토론되지도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나 유럽의회는 자체 재원의 비중을 늘리는 안을 지지해왔다. 분담금의 비중을 줄이고 자체 재원의 비중을 늘려야 예산의 독립성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이럴 경우 집행위원회와 특히 예산안을 확정하고 심사하는 유럽의회의 권한이 커진다.

유럽연합의 새로운 재원 도입 문제는 단순히 예산을 증액하는 문제가 아니다. 유럽연합의 정체성과 진로를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기존 회원국들의 경기가 호전된다고 과연 이들이 새로운 재원의 도입에 합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50년간 통합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회원국들은 유럽연합의 정체성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분명히 유럽연합은 단순한 국제기구가 아니다. 그러나 통합의 분야와 속도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새로운 재원 도입도 이런 측면에서 지켜봐야 한다.

/ anpye@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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