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금융일반

[세계는 지금 연금수술중]칠레형 민간연금이 뜬다

이장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19 14:21

수정 2014.11.06 23:58



1883년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국민의 노후를 정부가 책임지는 연금제도를 세계 처음으로 도입했다. 젊은 세대가 갹출한 연금 보험료로 노동력을 상실한 퇴직세대의 노후를 부양하고 그 세대가 늙었을 땐 다음 세대가 부양 의무를 지는 부과식(Pay As You Go) 연금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탄생 1세기 만에 심각한 구조적 모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인구 피라미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내야 할 사람은 줄어들고 받을 사람은 많아진 것이다.

각국 정부는 국가 재정 파탄과 성장동력 약화의 주범으로 연금제도를 지목하고 대대적으로 메스를 가하기 시작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연금은 도입 18년 만에 수술대 위에 올라있다. 유럽과 미국, 아시아, 남미 등 세계 각국의 화두로 떠오른 연금제도의 실상과 문제점을 10개국 현지 취재를 통해 분석하고 한국 연금제도의 진로를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저출산과 고령화는 일부 국가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 문제다. 노후세대는 늘어가고 이를 부양할 세대는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 연금 재정이 견딜 수 있나. 보험료 인상과 급여지급 시기 조정과 같은 해결책은 시한폭탄의 시계바늘을 늦출 뿐 파탄은 시간 문제다.” (호세 피네라 미국 케이토 연금연구소장)

“대통령의 현안은 연금문제를 개혁하는 것이며 이를 장래의 대통령이나 국회에 전가해서는 안된다.”(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룰라가 브라질 공무원 연금제도를 개혁했다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새 제도는 35년 후에나 시행된다” (바벨로 브라질 FGV대학 행정학과 교수)

세계는 지금 연금과의 전쟁중이다. 연금제도를 지탱한 인구 피라미드가 다이아몬드형이나 역피라미드 형으로 바뀌면서 과다한 연금지출 탓에 나라살림이 거덜나고 계층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개혁에 나서는 국가는 드물다. 정치권과 노조, 공무원 및 직종간 이해관계가 얽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막막한 상황이다. 정치인은 당장의 표에 목 말라 선심성 연금정책을 남발하면서도 급여 삭감 등 인기 없는 정책엔 몸을 사리고 있다. 노조는 노조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연금개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제 밥그릇을 제 발로 걷어차기 어렵기 때문이다. 연금 개혁을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일컫는 이유다.

사회통합과 계층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도입된 연금제도가 기득권의 치부 수단으로 변질된 사례는 브라질이 대표적이다.

브라질의 경우 연금 관련 적자가 국내총생산(GDP?6000억달러)의 7∼10%(약 42조∼60조원)로 추산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음에도 사회보장세를 징수하고 관리하는 사회보장부 연금국(INSS)은 전국에 1200개 지점을 두고 성업중(?)이다. 관련 공무원만 2만명이 넘는다. 적자의 주범인 이들은 정부가 연금 개혁에 나서자 파업으로 맞서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브라질 공무원은 퇴직 전 급여의 100%를 평생 지급받는다. 판사 등 고위직의 경우 월 3만레알(1500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샐러리맨은 연금상한선에 묶여 2400레알(120만원)을 넘지 못한다. 보다 못한 룰라 정부는 공무원 연금급여 상한선을 최종 급여가 아닌 평생급여 평균의 80%로 제한했지만 이는 신규 임용되는 공무원이 퇴직하는 35년 후부터 적용된다. 브라질 국민들에게 있어 연금제도는 공무원의 잔치일 뿐이다.

사회보장부 파이사웅 국장은 “연금 적자를 줄이고 부정 수급자를 적발하기 위해 탈세조사 강화 및 연금수급자 재등록 등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라고 말했으나 근본적인 대책으로 보긴 어렵다.

뼈아픈 반성을 거울삼아 개혁에 성공한 국가도 있다. 칠레와 싱가포르, 스위스, 호주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노후보장을 다음 세대가 아니라 본인이 알아서 책임지도록 제도를 개선했다는 점과 연금운용에 시장원리를 도입했다는 점.

칠레는 지난 81년 세계 최초로 국가연금을 민영화한 국가. 젊은 세대의 연금료로 퇴직 세대를 부양하는 기존의 부과식 연금제도를 폐기하고 완전히 새 모델을 채택했다. 근로자가 민간 연금운용회사를 선택하고 월급여의 10∼20%를 자기 명의의 연금계좌에 납부하면 연금운용회사는 근로자의 납부액을 모아 뮤추얼 펀드를 구성, 다양한 자산에 투자한다. 이렇게 불린 자금은 각 근로자의 자산이 되며 노후에 연금 형태로 지급받게 된다.
연금 운용사간 경쟁체제를 도입한 결과 칠레 근로자의 25년간 연금 수익률은 평균 12%에 달하는데 이렇게 쌓인 연금을 재원으로 매달 최종 급여의 70∼80%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칠레 가톨릭대 발데스 교수는 “칠레의 연금자산 총액은 약 750억달러인데 그중 근로자 납부액은 270억달러에 불과하고 나머지 480억달러는 운용 수익”이라고 말했다.
연금 운용사 연합회 아발라 이사는 “연금 민영화로 자본시장이 활성화됐다”며 “최근 20년간 칠레의 경제 성장률은 4.6%로 남미 중 최고인데 그중 1.1%는 연금이 경제 성장에 기여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오는 2040년이면 곳간이 비게 될 한국의 연금제도가 가야 할 길은 과연 무엇인가.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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