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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의 책돋보기-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

노정용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22 14:21

수정 2014.11.06 12:17



‘당신의 고매한 식견에서 보자면 당신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탁월한 심리 연구자입니다’라고 프로이트는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1862∼1931)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털어놓은 적이 있다. 프로이트의 동시대인으로서 그와 같이 비엔나를 무대로 살았던 슈니츨러의 문학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과론적 과학만능주의의 그늘에 가려 있던 여러 금기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혀내고 있다. 슈니츨러의 문학에는 성적인 충동과 같은 인간 무의식의 측면들이 이성의 제어를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당신이 여기를 떠날 수 있는 시간이 아직은 남아 있어요. 당신은 이런 곳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우리에게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으로 유명한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에서 호기심에 집단 혼음의식에 잠입한 의사 프리돌린에게 가면을 쓴 낯선 여인은 이렇게 탈출을 종용한다. 프리돌린은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체가 발칵될 처지에 놓이고 그 낯선 여인의 희생으로 그 곳을 가까스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서구 문학사에서는 이러한 집단 혼음의식의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때로는 그것이 사실적이 아니라 몽환적으로 묘사되어 지기도 하고 때로는―근자에는 ‘다빈치 코드’에서 암시되어지듯이―종교적인 의식의 일환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꿈의 노벨레’(1926)에서는 이러한 성적 금기의 문제가 남편인 프리돌린에게는 실제의 일로서, 부인인 알베르티네에게서는 꿈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사회종교사적 배경을 모른다 손 치더라도 ‘꿈의 노벨레’에서 이야기되어지는 상황은 평범한 시민의 사회 규범에서 보자면 더 이상 들춰내고 싶지 않은 금기의 영역에 속한다.
헛된 발걸음으로 자칫 침범하지 말아야할 영역을 넘어 갔다고 한다면 짐짓 놀란 눈빛으로 발걸음을 되돌리면 그만일 수 있는 금기의 영역이지만 어느 누구도 한번 깨트린 금기를 되돌릴 수 없어 보이는 것이 보다 인간적이랄까.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르투어 슈니츨러는 세기말의 비엔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여겨진다. 비엔나의 전통적인 부르조아 사회가 물려준 사회규범들 사이에서 꽃 피울 수 있었던 리버럴한 문화적 풍토가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시대적 진단은 슈니츨러 문학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슈니츨러의 문학적 형상들은 특유의 회의적인 아이러니와 심리학적 엄밀성으로 말미암아 동시대의 전형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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