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시론]자본시장 빅뱅을 위한 준비/황진우 대한생명 경제연구실 상무·경제학 박사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2.27 14:22

수정 2014.11.06 12:09



정부는 최근 자본시장을 통합하는 법률을 발표해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법안의 골자는 증권, 신탁, 선물, 투자자문 등으로 나뉜 자본시장 관련 금융업을 하나의 금융회사가 종합적으로 영위할 수 있게 하고 취급하는 금융상품의 종류도 미리 정해 일일이 허용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기준에만 맞으면 기본적으로 모두 허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변화에 발 맞추어 금융상품 투자자를 보호하는 제도도 강화하게 된다.

이러한 제도 변화는 종합 금융투자회사가 출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으로 벌써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판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가 나타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는 이 조치가 우리나라가 동북아 금융허브로 발돋움하는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조치의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이지만, 자본시장의 발달 정도나 관련 금융회사들의 경쟁력은 이에 걸맞은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금융의 두 축이라면 간접 금융을 담당하는 은행과 직접 금융의 자본시장인데 근래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은행이 소매 금융에 주력하면서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졌고 자본시장에서는 선진적인 금융서비스는 고사하고 주식, 회사채 등을 통한 자금 조달마저 위축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은행, 보험과 달리 자본시장은 그간 구조조정이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정부가 촉구하지 않아도 업계가 대형화 및 전문화의 필요성을 느껴왔으나 여러 사정으로 실제 구조조정 정도는 미미했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금융의 대형화?겸업화 추세가 꾸준히 진행돼 대형 금융회사들이 속속 출현하고 첨단 금융기법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부의 입법을 통해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좋든 싫든 빅뱅을 겪어야 할 판국이다.

문제는 선진 자본시장을 향한 길이 반드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이 금융 빅뱅의 예로 20년 전 영국을 들고 있다. 지난 1986년 당시 런던은 여전히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축의 하나였으나 미국과 아시아 등의 금융시장에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금융 빅뱅을 단행한 결과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했고 현재 런던은 세계 유수 금융시장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가 상당히 고무적인 전례이기는 하지만 우리 금융시장의 사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런던은 당시에도 세계 최고 수준의 금융시장이었으며 종사자들은 이에 걸맞은 전문성과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금융회사들은 자본시장 빅뱅에서 생존의 열쇠가 되는 자산운용이나 상품개발 능력에서 세계 수준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자본시장 재편의 중심이 될 증권사의 자본 규모를 보아도 선진 투자은행과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영국의 사례는 또 다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금 런던시장을 살펴보면 빅뱅 당시 존재하던 영국의 투자 은행들 거의 모두가 미국을 위시한 외국 자본에 인수됐다. 이를 영국 오픈테니스대회에서 항상 외국 선수들이 우승하는 것에 빗대 ‘윔블던 효과’라고 하기도 한다. 이는 당시 진정한 의미의 개방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고 런던금융시장이 국제자본의 논리의 의해 재편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자본의 은행 소유 비율이 높은 상황이나 산업 자본의 진입을 차단하겠다는 정부 방침이나 우리 금융회사들의 자본력 및 경쟁력을 볼 때 빅뱅 이후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단순히 제도만 바꾸고 나서 우리의 금융회사들이 세계의 유명 금융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동북아 금융허브를 구축할 것을 막연히 바라고 있을 것이 아니라 종합적인 배려와 지원이 필요하다. 이는 외국 자본을 막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금융회사들에도 충분한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배려와 지원은 과거와 같이 제도적인 보호막을 쳐 경쟁에서 보호해 주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 금융회사들의 자본 확충, 인력 유치, 상품 개발에서 실제 걸림돌을 제거해주는 형태가 돼야 할 것이다. 또한 다른 부문에서 유형 무형으로 우리 금융회사들에 주는 짐을 덜어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금융회사들도 제도 변화로 당장의 이해관계에 집착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선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약력 ▲서울 ▲47세 ▲숭문고 ▲서울대 경제학과 ㅍ미국 예일대 경제학 석사 ▲미국 예일대 경제학 박사 ▲한화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재정논집 편집위원 ▲경제사회연구회 평가위원 ▲대한생명 경제연구실 상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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