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으로 성공하려면 기업을 확장하겠다는 욕심부터 버려야 합니다.”
어느 잘나가는 중소기업 사장이 말하는 중소기업 성공 조건 1호다. 그야말로 뚱딴지 같은 성공조건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 분의 뒤이은 설명에 아이러니한 국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을 키우고 기업을 키우고 싶어하는 것이 기업하는 사람들의 똑같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기업을 키우지 말고 시장을 확장하지 말라고 하면 모두 미친놈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이같은 사례는 생활가전 분야에서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물량과 가격에서 월등한 대기업의 참여는 곧 중소기업의 퇴장을 의미한다. 이런 까닭에 중소기업들은 시장과 기업을 키우기보다는 적정한 수준 이하로 시장을 묶어두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이익을 남기며 생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어느 나라의 시장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 이익을 좇아 사업을 영위하는 것이 기업이다. 하지만 공존의 길은 아니다. 대기업이 나라 경제의 주춧돌이라면 중소기업은 그 틈새를 튼튼히 해주는 주춧돌의 받침대 역할을 한다.
10년 넘는 장기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 경제가 다시 회복을 선언했던 것도 대기업과 더불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과 중소기업만의 틈새시장 성공이 밑거름이 됐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국내기업의 투자는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중소기업도 그렇지만 대기업의 투자가 특히 답보 상태다. 대기업의 신규 투자는 미미하다. 현금은 쌓이고 있지만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80년대 반도체 투자로 대변되는 정보통신(IT) 투자로 90년대와 2000년대의 한국경제가 질주하고 있다면 향후 20년 앞을 내다볼 투자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아니 미래 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기업의 육성과 문화투자가 형성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런 차세대 분야의 투자 주도권은 자본력이 왜소한 중소 기업이나 중견 기업이 주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역할 분담이 아쉬운 대목이다. 외국의 경우 생명공학 분야에 대부분 다국적 제약회사 등 대기업들이 중심이 돼 회사별로 한해 적어도 1조원 이상을 쏟아부으며 투자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국내 현실은 정반대다. 자본금 100억원도 안되는 ‘구멍가게’ 바이오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그마나 조금 덩치가 크다는 제약회사들이 바이오 투자를 하고 있다. 일부 그룹들이 투자를 하고 있지만 미력하다.
모그룹이 5년 전 차세대 사업으로 생명공학 사업을 선언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한해 수조원의 이익을 내고 있는 이 그룹은 지금까지 생명공학 사업에 수천억원을 투자했다고 발표한 적이 없다. 바이오 사업이 미래 수종사업인 것은 알지만 외부적인 여러가지 이유로 투자 리스크를 짊어질 수 없었다는 얘기다.
차세대 사업으로 부상하고 있는 문화사업도 마찬가지다. 주먹구구식의 문화사업이 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주식시장에 몇몇 문화사업 기업들이 상장하면서부터다. 회계장부도 제대로 없었던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지 5년여. 이제는 CT(Culture Technology)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차세대 사업으로 면모를 일신하고 있다.
지난 99년 영화 ‘쉬리’ 이후 ‘공동경비구역’ ‘친구’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왕의 남자’(관람객 1200만명 돌파) 등으로 이어지는 영화 대박행진은 물론,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드라마 콘텐츠 수출도 문화사업의 수출산업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문화 콘텐츠 사업 수출 규모는 2000년 이후 5배 이상의 증가세를 보이며 2004년 5억5000만달러를 육박했다.
바이오와 문화 콘텐츠 사업은 투자 회수 기간이 비교적 길다. 꾸준히 투자를 해야 과실을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요즈음 한창 일컫어지고 있는 한류 열풍이 하루아침에 뚝딱 ‘도깨비 방망이’처럼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해리스 포터’와 ‘왕의 남자’의 차이는 작품성의 차이도 있지만 자본의 차이도 있다.
그나마 문화사업은 식품으로 대기업을 일군 몇개의 기업들이 나서고 있어 비교적 밝은 편이다. 그 기업들은 문화사업 덕에 매출이 최근 4∼5년새 2배 이상 비약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문화사업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상생이 새로운 트렌드로 제시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제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우군이고 연합군이 돼야 한다. 바이오 산업이든 문화산업이든 혹은 정보통신사업이든 상생이 필요한 까닭이다. 대기업의 시장은 이미 내수가 아니다. 메가트로닉스(로봇)사업과 바이오, 문화사업은 대기업이 이끌고 연구개발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중소기업이 받쳐주는 ‘사업적 구조조정’이 시급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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