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힘이 세다. 지난 3일 한국을 찾은 ‘슈퍼볼의 영웅’ 하인즈 워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다”면서 “어머니의 엄한 한국식 교육이 큰 힘이 됐다”고 고백했다. 하인즈 워드와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의 경우가 꼭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훌륭한 인물 뒤에는 언제나 ‘특별한’ 어머니가 존재하게 마련이다. 작고 낮은 목소리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안내하는 그녀들과의 만남을 시작한다. <편집자주>
■2.4㎏ 팔삭둥이로 태어난 형주
국내 최고의 팝페라테너 임형주(20)가 임신 8개월만에 태어난 팔삭둥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결혼한지 2년만에 가진 첫 아기여서 남편과 나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기대가 대단했어요. 그런데 형주는 여덟달만에 세상에 나오고 말았습니다. 출산 당시 아기와 산모, 둘 다 편치 않은 상황이었어요. 산모는 산모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성숙이 덜 된 폐 때문에 호흡 곤란을 일으켜 갓 태어나서도 울음을 터뜨리지 못했습니다.”
당시로서는 꽤 다급한 상황이었겠지만 20년 전 일을 떠올리면서 어머니 김민호씨(46·디지엔콤 대표)는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김씨는 인큐베이터 신세를 지다가 두 달 반만에 집으로 돌아온 첫 아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고 또 올렸다고 했다.
팔삭둥이였지만 형주는 그 이후 잔병 치레 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줬다. 그런 아들이 김씨는 대견하기만 했다.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남이 뭐라고 하든 말든 태담(胎談)을 하곤 했는데 형주가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 또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아이가 알아듣든, 못아듣든 말을 걸고 또 걸었지요. 태교음악을 들려주듯 아이에게 늘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고요. 주로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줬지만 꼭 클래식만 고집했던건 아니에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 음악, 저 음악 모두 들려줬죠. 증명할 순 없지만 이 때 나눴던 대화와 음악이 형주의 감수성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들에게서 바비인형을 뺏지 않았다
지금도 계집애 같다는 말을 자주 듣지만 형주는 어린시절부터 여성스러운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의 남자아이들은 일정한 시기에 로봇이나 자동차에 매료되게 마련인데 형주는 좀 달랐다. 계집애들처럼 바비인형을 좋아했던 것이다.
“보통의 사내녀석들과 달리 형주는 늘 바비인형을 끼고 살았습니다. 얼마나 인형을 좋아했던지 내가 사준 것과 친척들에게 선물로 받은 갖가지 모양의 바비인형이 100개가 넘었어요.”
그 뿐이 아니다. 한글을 뗀 여섯 살 이후에는 ‘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이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순정만화를 끼고 살았다. 그러나 김씨는 이런 아들을 보면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하루종일 바비인형을 끼고 노는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형주에게서 바비인형을 뺏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녀석의 특이한 개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감성을 더욱 키워주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남자아이는 이래야 하고 여자아이는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버리고 타고난 성향을 존중해주는 쪽으로 아이를 키우기로 결심한 거죠.”
그러면서 김씨는 좀 막연하기는 했지만 아들을 예술가로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그림도 곧잘 그리는 아이. 경복궁이나 덕수궁 같은 고궁에 앉아 “나는 왕자”라며 엉뚱한 상상의 나래를 펴는 아이. 하나하나 이름붙인 바비인형을 목욕시키면서 끊임없이 재잘대는 아들을 보면서 김씨는 이 아이가 예술가로 성장하기를 바랐다. “형주가 1986년 5월7일생입니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작곡가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의 생일이 공교롭게도 5월7일이에요.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형주는 음악가가 될 운명을 갖고 태어났나 보다라고 생각하게 됐어요”라며 김씨는 활짝 웃었다.
■임형주는?
국내 최고의 팝페라테너 임형주는 1986년 서울 태생으로 예원학교와 줄리아드 음대 예비학교를 거쳐 현재 이탈리아 산펠리체 음악원에 재학중이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서 애국가를 부르면서 스타덤에 오른 임형주는 그해 국내 첫 단독 콘서트를 가진데 이어 남성 성악가로는 최연소로 미국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 독창회를 가졌다. 지난 2003년 출시한 데뷔 앨범 '샐리가든'을 비롯해 '실버 레인' '미스티 문' '더 로터스' 등 내놓는 음반마다 대박을 터뜨려 2003년 이후 3년 연속 클래식부문 음반판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중성적인 외모와 목소리, 클래식과 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음악적 변주가 임형주가 갖고 있는 매력의 실체라는 평가다.
/ jsm64@fnnews.com 정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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