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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의 패션 엿보기-펑크룩]저항·공격패션…70년대 유행

박신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4.05 14:41

수정 2014.11.06 08:13



인기 연예인들의 의상은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인기절정의 젊은 가수들의 의상은 늘 화제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그들의 의상 중에 검정의 가죽재킷, 찢어진 바지, 지퍼와 버클, 체인 장식과 짙은 화장을 한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의상은 1970년대 유행했던 펑크룩(Punk Look)의 한 모습이며, 경제상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펑크는 속어로 ‘가치 없는 것, 시시한 사람, 재미없는 것, 불량소년 소녀, 풋내기’라는 의미이다. 펑크룩의 사전적 의미 또한 반항적이고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공격적인 패션을 의미한다. 펑크의 발생은 60년대 후반 미국이었으나, 아마추어 수준이었고, 실질적 펑크의 등장은 1976년 영국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에 의해 이뤄졌다.
이들은 런던의 킹스로드(King's Road)의 부띠끄 ‘Sex’에서 탄생됐으며, 그 부띠크의 주인인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대표적인 펑크룩의 디자이너로 펑크룩의 전파에 공헌했다.

즉, 펑크룩은 영국에서 노동계층 청소년들 사이에서 경제 불황과 실업의 만연 속에서 기성사회의 권위체제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됐다. 또한 펑크룩은 1960년대의 히피 낭만주의의 반작용으로 히피가 추구한 ‘평화와 사랑’ 대신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의상을 이용해 고의적으로 반항적인 스타일을 창조했다.

당시 펑크룩은 도발적인 느낌의 검정 가죽 재킷, 찢어진 청바지, 안전핀, 짙은 화장과 총천연색으로 염색한 닭 벼슬처럼 추켜세운 머리와 쇠사슬체인, 피어싱으로 혐오감을 줬다. 이들은 획일화된 패션을 거부했으며, 개성과 자유를 추구하고, 파괴적이고 도전적이었다.

펑크족들은 자신들의 분노와 허무감을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복식을 통해 발산했고 따라서 보다 더 극단적인 스타일을 선택하게 됐다. 펑크족들은 부와 관련된 전통적인 규범을 무시하고 절제, 간소함, 나아가서는 빈곤하게 보이도록 하는 역설적인 스타일을 선택했고, 기존의 아름다움에서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추의 미를 수용했다.

그러나 최근 발생한 펑크룩은 디자이너들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작용, 극단적이고 충격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현대 고급문화가 지니고 있는 세련미와 우아함을 덧붙였다. 즉, 하위문화가 가지고 있는 저항의식이나 허무주의적 모습은 가지지 않고, 스타일상의 모방만을 통해 재창조한 것이다.

펑크룩을 표현할 때 금속 장식을 사용했으나, 불량스럽지 않게 하고, 워싱가공된 가죽과 데님 등 거친 소재를 사용하나, 섹시한 느낌을 주었다. 색상은 검정을 중심으로 흰색과 비비드 컬러를 함께 활용했다. 또한 신체에 영구적 변형을 주어 혐오스러움을 주던 문신, 피어싱, 머리카락의 절단 등의 아이디어를 순간성이 가능한 의복, 장신구, 가발 등으로 바꿔 누구나 쉽게 펑크 패션을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나의 패션이 생겨나는 데에는 많은 요소가 있으나, 특히 그 시대 경제상황이 많은 영향을 준다. 펑크룩이 발생했을 당시 영국의 불황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경제상황도 재산, 소득, 청년실업 등 양극화 문제로 아직 호황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이러한 경제상황에서 자신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펑크룩을 찾고 있다.

/이윤정 경인교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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