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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의 체스 A to Z-폴 모피(하)]필리도·스톤턴과 근대 체스 초석마련

김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4.05 14:41

수정 2014.11.06 08:12



1859년 다시 영국으로 건너간 모피는 당대 영국 최고수라 불리던 줄스 리비에, 새뮤얼 보든, 토머스 반즈, 요한 로웬탈, 헨리 버드 5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다면기에서 2승2무1패로 승리한다.

한동안 하워드 스톤턴과의 대전을 성사시키려 했으나 무위로 끝난다. 이 부분에 대해 스톤턴이 고의적으로 회피했다는 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어쨌든 이미 전성기를 훨씬 넘긴 중년의 스톤턴이 모피의 적수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다시 고향을 향해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간 모피는 세계챔피언에 준하는 영웅 대접을 받는다. 뉴올리언스까지 미국의 여러 도시들을 거치면서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고향에 도착해 변호사 개업을 한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1861년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남부의 독립을 반대하며 남부군의 징집을 피해 다시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 미국 내전이 끝난 후 다시 귀향해 변호사 개업을 하나 전쟁 중 남부 독립의 반대와 징집 회피 경력으로 인해 뉴올리언스인들로부터 외면당한다. 모피의 변호사 사무실에는 가끔 멀리서 체스에 관련된 일로 찾아오는 사람 밖에 없었다고 한다.

당시 체스를 포커와 비슷한 도박 정도로 인식하던 미국 남부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주변 환경으로 인해 체스에도 복귀하지 못하며 여생을 쓸쓸하게 혼자 보내던 모피는 마흔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한다.

폴 모피는 프랑스의 프랑수아 필리도와 영국의 하워드 스톤턴의 계보를 잇는 근대적 체스의 초석을 다진 사람중 한 명이다. 주로 타고난 천재들이 깊은 위치적 전략보다 전술에 의존하는 것과는 달리 모피는 깊은 전략으로 당대 마스터들을 뛰어넘었을 뿐만 아니라 체스 이론을 한 걸음 발전시킨 인물이다.

■ 캐슬링(Castling)
체스에는 특별한 행마 즉 '특별 규칙'이 있다. 이 중 킹과 룩을 한 수에 같이 움직이는 룰이 있는데 이를 '캐슬링(Castling)'이라고 한다.

캐슬링을 하게 되면 킹을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동시에 룩을 중앙의 접전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기초적인 전략으로 대국 초반에 빨리하면 할수록 좋다.

캐슬링을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그림1>처럼 e1 자리의 킹을 룩 방향으로 2칸 이동시킨다. 그런 다음 룩은 킹을 뛰어넘어 킹 바로 옆으로 간다. <그림2>는 캐슬링 후의 모습이다. e1에 있던 킹은 g1으로 옮겨 갔고 h1에 있던 룩은 킹 왼쪽 한칸 옆인 f1 자리로 이동했다. 킹 사이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킹사이드 캐슬링'이라고 부른다.

이제 <그림3>을 보자. 킹은 e1에 있고 룩은 a1에 있다. 여기서 킹을 룩 방향으로 두칸 이동시킨다. 그런 후 룩은 킹을 뛰어넘어 킹 오른쪽 옆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림4>는 캐슬링 후의 모습이다. e1 킹은 c1으로 옮겼고 a1에 있던 룩은 킹 오른쪽 한칸 옆인 d1으로 이동했다. 퀸 사이드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퀸사이드 캐슬링'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캐슬링은 대국 중 딱 한번 할 수 있다. <그림5>와 <그림6>처럼 킹이나 룩이 이미 움직였다면 캐슬링을 할 수 없다.
킹이나 룩이 움직인 후 자신의 자리에 다시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캐슬링은 불가능하다.

킹이 지나가야 할 칸 중 하나가 상대방의 공격권에 있거나 킹이 캐슬링 후 상대방 기물의 공격권에 들게 되는 경우에도 캐슬링은 불가능하다.


다음 시간에는 이러한 규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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