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L,무난한 1년 성적표/정해방 기획예산처 재정운용실장

지난해 도입한 임대형 민자사업(BTL)이 시행 2년째를 맞았다. 86개 사업 3조8000억원 고시, 33개 사업 협약체결, 그중 14개 사업 착공이 BTL 사업의 지난 1년간의 성적표다.
이를 놓고 당초 기대에 비해 부진하다는 의견도 있으나 제도 시행 첫해에 중소업체의 반발 등 예기치 못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투자자 참여도 활발해 평균 경쟁률은 3대 1을 나타내고 있고 기준 국채에 가산되는 추가금리 수준도 정부가 예상한 0.5∼1.5%포인트 수준에서 결정되고 있는 등 내용상으로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BTL 사업의 성공적인 도입은 우리 사회의 안정성과 사회 각 부문의 발전된 역량을 입증한다. BTL 사업은 20년 이상의 장기간에 걸친 사업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경제·사회구조와 각 구성원 역량에 대한 믿음 없이는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BTL 사업의 성공적인 도입은 세계 민자제도 발전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세계의 민간투자제도는 지난 90년대 초부터 시작해 80여 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분류된다. 쉽게 표현하면 개도국형과 선진국형이다.
개도국형(BTO)은 도로·철도·전력 등 부족한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민간자본을 유치하고 사용료 수입으로 민간 투자비를 보전하는 형태다. 주로 동남아·동유럽·남미 국가에서 많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선진국형(BTL)은 다른 필요에서 발전했다. 이들 나라에서는 SOC 스톡은 충분히 적립돼 있는 반면, 교육·복지·문화 등의 재정 수요는 늘어나 이를 충족하기 위해 민자제도를 발전시켰다. 특히 이들 나라는 민자제도를 활용함에 있어서 재정 지출의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종래에 만족스럽지 못했던 정부조달 시스템을 민간의 참여를 통해 혁신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때 민간투자비는 사용자가 아니라 정부가 이용 실적에 따라 지급한다.
BTL 방식은 영국이 지난 92년 처음으로 추진했고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시기인 94년 BTO 방식의 민자사업을 도입했다. 12년이 지난 지금 BTO 사업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세계적 수준의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다.
이제 BTL 사업 도입으로 우리나라는 명실상부하게 두 제도를 동시에 갖춘 나라가 됐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처럼 양 제도를 체계적으로 갖추고 활발히 추진 중인 나라는 없다. 물론 BTL 사업의 경우 아직 보완할 사항도 많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민자시장의 선두 주자로 우뚝 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짧은 기간 안에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우리나라 민자 모델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재정이 열악한 후발 개도국에 우리의 추진 경험을 적극 전파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도 민자제도 발전을 위한 정례 국제교류를 희망해 와서 올해부터 상호 방문해 현안을 논의하고 경험을 공유하기로 하였다.
지난해 유럽의 민자시장 규모는 950억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110조원 규모다.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을 포함한 전체 세계시장은 연간 200조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각국의 재정압박 증대, 국민의 양질의 공공서비스 요구 및 공공기능에 대한 민간 역할 확대에 따라 앞으로 이 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호주의 조그만 투자은행이었던 매쿼리 은행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세계 민자시장을 전략적으로 공략해 짧은 기간에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도 이와 같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새로 도입한 BTL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민자사업 시행을 통해 단련된 우리나라의 금융기관, 건설회사가 세계 민자시장을 주도하고 각국이 우리나라의 민자제도를 앞다퉈 배우러 오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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