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순리대로”
자폐인의 삶을 그린 영화 ‘말아톤’과 ‘레인맨’을 보면 발달지체장애인을 아들이나 형으로 둔 가족이 힘겨워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자폐인들은 무언가에 몰두하는 듯한 폐쇄성으로 인해 성장을 해도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가족들에겐 큰 슬픔이다. 하지만 자폐를 앓는 이들 중에는 천부적인 기억력이나 예술성을 타고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을 흔히 ‘서번트’라고 부른다. 영화 ‘레인맨’의 주인공이 바로 이런 재능과 자폐를 동시에 타고난 사람이다.
만약 쌍둥이가 모두 영화 ‘레인맨’의 주인공과 같다면 그 가족의 삶은 어떻게 될까. 충북 청주에 사는 오운진·유진씨(24)는 서번트와 비슷한 형태의 자폐증을 갖고 있는 쌍둥이다.
또 동생 유진씨는 작곡에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다. 베토벤의 ‘운명’을 쳐보라고 했더니 생각나는 대로 쳐서 완성한 것이 그의 첫 작품 ‘밀레니엄 소나타’다. 이 곡은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 그 뒤로 유진씨는 대학 졸업식,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 제작발표회, 서울 컬렉션 패션쇼, 장애인 인권상 시상식 등에서 연주를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유진씨는 ‘밀레니엄 소나타’ 외에도 ‘스프링 오브 2006’, ‘아름다운 졸업’ 등 총 23곡을 지금까지 작곡했으며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3곡을 작곡했다.
그렇다고 해도 서번트들은 분명 자폐라는 장애를 앓고 있기 때문에 정상인과 똑같은 생활을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머니 유계희씨(52)는 자식들로 인해 더없이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한다.
“아이들만 보면 부러울 것이 없어요. 집에 있는 아이들만 보면 늘 행복해요. 화가 나고 짜증날 때가 있어도 아이들로 인해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둔 모든 엄마들은 다 똑같은 생각일 겁니다.”
유씨 가족은 자폐를 지닌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두 아들은 모두 정상인들과 함께 대학을 다녔고 형은 졸업 후 취업을, 동생은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다.
“아이들 때문에 기뻤던 것은 큰 아들 운진이가 취직을 했을 때였어요. 마음의 짐을 많이 덜었죠. 또 둘째인 유진이가 지난 2월 배재대 졸업식장에서 총장님으로부터 특별상을 받을 때도 무척 기뻤어요.”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비결에 대한 유씨의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냥 순리대로 나갔어요. 유진이의 경우 처음부터 베토벤이나 모차르트의 곡들을 치게 해야겠다고 성급히 생각하지 않았지요. 꼭 피아노로 대학을 보낸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어요.”
유씨는 자폐를 앓고 있는 아들을 대학까지 보내게 된 것은 유명한 작곡가나 기술자를 만들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고 했다. “인생의 길은 정도가 없는 것 같아요. 노력하다 보면 길이 열리죠. 우리가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가다보면 어떤 길이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유씨는 자폐아를 키우는 다른 어머니들에게 “힘들다고 너무 성급하게 큰 목표를 세우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고달프고 힘든 것을 만나도 그것 또한 또다른 형태의 우리의 삶입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들 마음이야 조급하겠지만 그럴수록 느긋한 마음으로 현실을 받아들이고 세월과 부딪쳐 싸워야 합니다.”
/ rainman@fnnews.com 김경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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