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원석칼럼]노숙자의 아름다운 일자리/방원석 논설실장

방원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이명박 서울 시장은 언젠가 자신은 어떻게 해야 서울 시민이 즐겁고 행복해 할까를 먼저 생각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청계천 복원이나, 서울숲, 서울광장 조성, 보행자 및 버스 중심의 교통체계도 이런 시민의 행복철학 아래서 나온 것이다.

퇴임을 앞둔 이시장이 얼마 전 중앙언론사 논설위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재임시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노숙자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도운 게 가장 애착이 가고 보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절망에 빠진 노숙자들과 씨름하고 이들을 설득하고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공직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는데 의당 청계천 복원이나 대중교통체계 개선을 치적으로 내세울 줄 알았던 기자들이야말로 상식의 허를 찔린 셈이다.

노숙자 재기 도운 게 보람

“재임 2년 간은 온통 노숙자들을 어떻게 하면 깨끗이 씻겨주고 먹여주고 재워줄까, 삶의 쉼터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크게 고맙게 생각하지 않더군요. 요즘은 끼니를 주는 데가 많아 노숙자들이 오히려 입맛을 골라 다닙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재기를 도와줘야겠다 싶어 생각한 게 노숙자 일자리 갖기 사업입니다.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전세 1000만원에 매달 관리비 5만원짜리의 싼값으로 임대주택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이들에게 뚜렷한 목표가 생겼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이제 희망이 생겼다고 가슴을 치고 울면서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집이라도 생기면 도망간 아내를 찾지는 못하더라도 자식들만큼은 떳떳이 찾을 수 있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지금 노숙자들의 소원은 토요일, 공휴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퍼준들 깨진 독에 물 붓기식이고 무엇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재기할 수 있다는 게 이시장의 판단이었다. 설혹 먹여주고 재워준다고 해도 이는 재활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던 탓이다. 그래서 노숙자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는 과거의 단순한 봉사에서 벗어나 이들의 재기를 돕는 일자리 마련으로 사업을 업그레이드한 게 올 초부터다.

요즘도 서울시가 관장하는 서울 종로의 보도블록 교체 공사나 뉴타운, 지하철공사 현장에 수백명의 노숙자들을 투입해 일당 5만원씩 지급하고 있다. 수입이라야 매달 100여만원에 불과하지만 재활의 날갯짓을 하는 아주 의미있는 액수다.

사실 노숙자들은 사업을 실패했거나 가족의 따돌림 등으로 가출해 인생을 자포자기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도통 희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일하고 싶은 의욕이 있어도 일자리가 마땅치 않고 그렇다고 누구하나 재기를 거들떠보지 않는 차가운 현실이다.

희망의 싹 틔운 일자리

하지만 일자리를 주고 집까지 약속하자 전혀 가망없어 보이던 이들이 삶의 의욕을 불태우고 시작했고 희망의 싹을 틔우는 모습에서 일자리의 아름다움, 그 신성함을 이시장이 새삼 실감한 것이다. 돈벌이에만 급급했던 최고경영자(CEO) 시절에야 이런 노숙자의 내면까지 들여다보기는 힘들었을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 희망 없이 살아가는 집단이나 부류들이 어디 노숙자들뿐인가. 달동네나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 되는 청년 실업자 등 국가나 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아니라면 국가와 사회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회 복귀를 도와주는 게 의무요, 역할이다. 서울시의 노숙자 일자리 갖기는 바로 따뜻하고 감동적인 행정의 전형인 것이다.

무엇보다 노숙자의 일자리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분배의 정의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가 과연 어떻게 해야 어려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그래서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인지 그 해법까지 제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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