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일본 중소기업을 배운다]과감한 구조개혁·R&D로 ‘10년 불황’탈출

이진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잃어버린 10년’ 장기 불황의 사슬을 끊는 원동력을 제공했던 일본 중소기업의 힘.

불경기의 어려움 속에서도 설비 및 연구개발(R&D) 투자 확대가 일본 경제의 선순환을 가져와 회복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은 대기업 의존에서 벗어나 자립형 혁신기업으로 변신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장기 침체기의 최저점이던 2002년 1·4분기에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마이너스 2%대를 기록하며 아시아 경제의 맹주로서 위상이 흔들렸던 일본. 10년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일본 정부와 국민, 기업 등 경제주체들의 뼈를 깎는 노력에 기인하지만 그 중 가장 돋보이는 부문은 중소기업이었다.

■과감한 구조조정·투자로 불황 극복

부동산 버블 붕괴로 야기된 일본의 장기불황은 자산 가치의 하락을 가져와 당시 차입경영에 의존하던 중소기업들의 파산 사태를 가져왔다.

또한 비용절감을 하려는 대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태풍에 협력 중소기업들은 추풍낙엽의 신세였다. 중소기업들은 원가 수준의 납품단가 인하를 강요받으면서 무더기 도산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특히 과잉채무, 과잉인력, 과잉설비의 ‘3대 과잉’ 문제를 청산하는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되면서 기업들은 기나긴 경기침체에서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지속적인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의 늪에 빠진 일본경제는 1998년, 2000년 두 차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부실채권 점증에 따른 금융 불안은 ‘일본경제 위기론’까지 등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기업들은 조용하게, 그러나 과감하게 자기 살을 도려내는 자기 혁신의 고통을 감내하며 ‘위기 뒤의 기회’를 준비했다.

대기업보다 더 혹독한 구조개혁을 단행했다. 중소기업 고유의 기술 개발 및 고도화에 먼저 자생력 강화의 채찍을 내리쳤다. 대기업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던 영업 관행도 독자적 온라인 판매망을 개설하는 등 마케팅 강화로 변모했다. 또한 대기업과 제품개발 과정에 배제됐던 기존의 협력관계를 탈피, 초기단계부터 참여해 중간 유통단계를 축소하는 개혁도 일궈냈다.

또한 일본 제조업의 기본정신인 ‘모노 쓰쿠리(좋은 물건 만들기)’와 ‘히토 쓰쿠리(인재 만들기)’를 근간으로 효율적인 인력활용 및 생산혁신기술 노하우 습득으로 경제위기를 헤쳐나갔다. 이는 적극적인 기술 및 설비 투자, 소량제품 판매 등 생산품목의 다변화, 해외시장 적극 개척에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중소 제조업의 기반을 회복시키는 계기로 이어졌다.

실제로 이 기간에 중소기업들은 제조 종사자나 업체 대표 스스로가 연구개발에 몰두하거나 대학에 위탁 또는 산학협력을 통해 신기술 연구개발에 주력했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보고도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인건비 및 제조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대거 진출했던 일본 제조공장들이 자국으로 회귀, 설비투자를 늘린 것도 일본경제 회복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생산시스템 혁신화로 인건비 부담을 줄였고 첨단 기술의 고도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제품의 자국 생산 증대 등이 순기능을 한 셈이다.

■한국 중소기업도 늦지 않았다

이같은 일본 중소기업들의 뼈를 깎는 노력은 2000년에 들어서면서 효과가 가시화됐다. 일본중기청의 ‘2006년판 일본중소기업백서’에 따르면 일본 중소기업의 수출지수는 2000년 100을 기준으로 2005년에는 127.3까지 급증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5년 대기업의 수출지수가 119.5인 것과 비교해보면 놀라운 신장세다.

중소기업 제품의 제품별 점유비율도 지난해 섬유 89%, 목재 목제품 84%, 토석 65%, 화학 34%, 운송기계 15%를 차지할 정도로 든든한 초석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2002년 2·4분기 실질 GDP 성장률이 4%대로 도약하면서 경제를 상승국면으로 반전시켰다. 2001년 0.1%였던 일본의 실질 GDP 성장률은 지난해 2.7%를 기록하며 안정적 성장궤도로 올라섰다.

특히 지난해 4·4분기 경제성장률은 5.5%로 미국, 유럽의 성장세를 훨씬 웃돌며 설비투자 확대→고용 증대→임금소득 상승→소비 증가의 선순환 구조를 이끌고 있다. 일각에선 일본경제가 향후 ‘황금의 10년기’를 구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일본 상공조합중앙금고의 거래처 2500개사 투자계획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 제조업체의 설비투자 실적이 전년대비 26%를 기록, 2003년부터 3년연속 두자릿수 증가율을 유지했고 올들어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 중소기업의 장점은 위기에 더욱 강하다는 것이다. ‘10년 불황’의 그늘 아래서도 국내외 경쟁력이 앞서 있는 부품·소재기술을 기반으로 IT 등 첨단과학산업과 접목, 소형화·경량화 등 기술 고도화를 차근차근 벌여왔고 인재경영, 노사화합 경영, 혁신경영에 주력하며 ‘10년 황금기’에 대비한 끝에 이제 그 결실을 거둘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도쿄사무소 관계자는 21일 “반도체를 중심으로 부품·소재기술 및 정보기술(IT) 관련 기업이 많이 등장,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중국, 러시아 등 브릭스(BRICs) 국가 중심으로 수출을 늘리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LG경제연구소 이지평 연구원은 “우리나라도 성장 잠재력이 계속 떨어지는 등 단순한 경기순환으로 보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점이 있다”며 “경영 및 기술혁신, 지속적 투자를 통한 신진기업 육성, 고유기술 강화에 따른 전통 제조기업의 약진 등 일본 중소기업의 불황극복 파워 경영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email protected] 이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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