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Inside]수십년 노하우 축적…고객 믿음도 쌓여

아리아 오르간, 낫소 골프공, 무궁화표 비누, 몽고간장, 예산 옹기….
이들 제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요즘 현란하고 시끌벅적한 각종 상품광고의 홍수 속에 직접 접할 기회는 드물지만 한번쯤 들어봄직한 이름이 왠지 낯설지는 않다.
모두 수십 년간 가업 계승으로 이어져온 제품이다. 급변하는 사회·경제의 여건 속에도 수십 년간 집안 대대로의 전통 사업을 묵묵히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기업들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업승계 기업’은 수십 년 동안 내려온 집안 전통의 제조비법, 경영방식, 인재양성 등을 고수하면서 같은 혈족이나 친인척에게 경영권을 이어가며 꿋꿋이 ‘나만의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가업계승, 경쟁력 퇴보 아닌 ‘진화’
‘낫소(NASSAU)’라는 골프공 브랜드로 유명한 서울낫소(대표 송철호). 이 업체 역시 58년 전통의 가업승계 기업이다. 서울화학공업사로 첫 출발한 서울낫소의 창업주는 송재선 회장. 현재 사장은 송회장의 아들로 2대째 경영을 잇고 있다.
서울낫소는 72년 국내 최초로 ‘낫소’라는 브랜드로 골프공과 테니스공을 생산한데 이어 75년 미국 테니스협회(USTA), 76년 미국골프협회(USGA)와 영국왕립골프협회(R&A)로부터 국제공인구 승인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회사의 유준수 관리이사는 “가업승계기업인 만큼 애착을 많이 갖고 경영을 하기에 회사 분위기가 가족적이며, 노사관계도 원만하다”고 밝혔다.
송대표의 자녀 중 서울낫소에 근무하는 사람은 없지만, 회사측은 3세 경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몽고간장의 몽고식품은 가업승계기업 중 유명한 업체다. 지난해 11월 창업 100년을 맞았던 몽고식품은 비록 1905년 ‘물 좋은’ 경남 마산에 일본인이 세운 ‘야마다(山田) 장유공장’이 효시였지만 현재 김만식 회장의 부친인 김홍구씨가 공장장으로 일하다 45년 광복과 함께 회사를 인수하면서 가업승계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회사는 150여명 직원들 중 근속기간 20년을 넘긴 장인급 직원이 20명을 넘는다. 김남대 연구소장은 “지금의 몽고간장 맛은 수십 년간 소비자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 온 결과”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오르간 전문 제조사로 업력 65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리아악기(대표 하정신)는 69년 국내 처음으로 전자 오르간을 개발, 80년대 중반 이후 전자오르간은 물론 리드(풍금), 교회용 오르간 부품, 디지털오르간 등 제품개발을 이어오며 해외수출을 선도하고 있다.
150년간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예산전통옹기(대표 황충길)는 큰 항아리를 30∼40분의 짧은 시간에 구워내는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막내아들이 4대째 후계자 작업을 하고 있다.
수제등산화 구둣방에서 출발해 2대째 가업경영을 하고 있는 송림제화(대표 이덕해)도 국내 첫 국산 등산화를 탄생시키며 산악인 허영호씨,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유명인사들을 단골고객으로 둘 정도로 전통과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가업 전통으로 이어져 온 경영기법 및 기술이 시대적 변화를 수용 또는 도전하면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고객과 신뢰, 한우물 경영이 장수 비결
국내에서 가업승계기업이라 하면 업력 30년 이상이면서 가족이나 친인척이 경영권을 승계, 2대 이상 가업을 잇고 있는 주로 중소기업을 뜻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회장 김용구)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가업승계기업의 경영특성 및 애로실태 조사’ 결과에서 가업승계 기업들은 장수 비결로 ‘거래기업(소비자)과 오랜 신뢰구축’(36.7%)을 가장 높게 꼽았다. 또 ‘한우물 경영’(24.1%), ‘독보적인 기술유지’(17.5%)도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5월 LG경제연구원의 ‘한국의 장수기업’ 보고서에서 장수기업 특징으로 거론된 ▲한곳에 집중하는 한우물 경영 ▲외형보다는 내실 추구 ▲고객 중심의 경영 ▲끊임없는 혁신 ▲윤리경영 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가업승계 기업의 장점으로 61%가 ‘경영자의 애사심 및 높은 책임감’을 첫번째로 꼽았다. ‘가족적인 기업 분위기로 직원간 협력이 잘 된다’(17.5%), ‘경영비법 및 조직의 계승·발전에 유리하다’(16.8%)는 응답도 많았다.
특히 현재 경영자가 이전 경영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한 이후 ‘회사 규모가 커졌다’는 응답이 63.5%나 차지, 가업승계 자긍심이 높았다. 이는 10명 중 6∼7명이 앞으로도 자녀와 친인척에게 경영을 승계 방식으로 유지하겠다는 의견과 이어지고 있다.
반면 경영자들 대부분은 승계에 따른 체계적인 후계자 교육이 필요하다고 공감했고 ‘급변하는 시대 및 환경에 적응 곤란’을 비롯해 ▲경영자 전문성 부족 ▲상속세 등 세법상 제약 등을 약점 또는 애로사항으로 지적했다.
이와 관련,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3월에 발표한 ‘장수기업에서 배우는 지속성장 전략’ 연구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자본주의 역사가 짧고 기업환경도 역동적이어서 100년 이상 번영하는 장수기업이 나오기는 시기상조”라고 지적하면서도 “외국 장수기업의 성과가 좋은 것을 볼 때 미국의 GE와 같은 초유량 장수기업이 출현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전망했다.
/ jinulee@fnnews.com 이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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