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증권 전 최대주주인 소로스 펀드가 유상감자와 지분매각 등을 통해 막대한 차익을 올리고 지난해 말 한국을 떠나면서도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소로스 펀드가 철수한 이후 최대주주가 된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은 지난 14일 유진기업에 지분을 매각하면서 아직 행사하지도 않은 스톡옵션 지분까지 ‘예약매매’ 형태로 처분, 차익 챙기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외국계 자본들이 ‘단물 빼먹듯’ 유상감자를 통해 막대한 차익을 올리면서도 교묘히 세금을 피하가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어 규제의 목소리가 높다.
■유상감자 세금 회피 주요 수단
1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최근 2∼3년간 유상감자는 외국계 투기자본의 중요한 투자자금 회수 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제일은행 매각으로 1조1500억원의 차익을 올리고도 한 푼의 세금을 내지 않은 뉴브릿지 캐피탈이나 외환은행 매각을 통해 4조5000억원의 이익을 거둔 론스타의 과세 논란을 피하기 위한 변칙 기법인 셈이다.
소로스 펀드의 페이퍼컴퍼니인 QE인터내셔날은 지난해 12월 서울증권 주식 7155만3000주(지분율 27.6%)의 대부분인 6980만7990주를 20여 곳의 국내외 투자자에게 분산 매각하면서 손을 털고 나갔다. 이에 앞서 QE인터내셔날은 400만주의 이익소각(감자) 등을 통해 127억원의 자금을 회수하는 등 총 361억6000만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브릿지증권의 대주주인 BIH도 지난 2002∼2004년 네 차례에 걸친 유상감자를 통해 2200억원의 투자자금 대부분을 회수했고 골든브릿지에 브릿지증권을 매각, 1000억원 대의 차익까지 남겼다.
문제는 QE인터내셔날과 알피지(엘)리미티드(브릿지증권 투자사)의 소재지가 조세회피 지역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이라는 점. 이로 인해 이들 펀드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JP모건 컨소시엄이 지분 76%를 보유하고 있는 ㈜만도의 경우에도 2003년 말 자본금의 33.5%를 유상감자했고 JP모건은 760억원을 회수했다. OB맥주의 대주주인 벨기에 인터브루도 회사의 자본금 60%를 감자해 1500억원을 회수했다. 그러나 외국자본들이 유상감자를 통해 회수하거나 차익을 남긴 자금에 대해 세금을 제대로 납부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외환은행 매각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론스타도 지난 2003년 법정관리 중이었던 극동건설을 1476억원에 인수한 후 1583억원에 매각하면서 유상감자를 통해 650억원, 고액배당으로 240억원을 회수하는 등 세금회피 기법을 사용한 바 있다.
유상감자는 유상증자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자본금을 줄이면서 기존 주주에게 줄어든 자본금만큼 보상하는 금융 기법이다.
■정부 뒷북 대책 ‘실효성 의문’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조세특례제한법’에 의해 세금혜택 및 면제를 받고 있는 지역은 65곳. 하지만 조세회피지역(원천징수절차특례 적용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말레이사 라부안(7월1일 시행) 한 곳뿐이다. 정부는 이 지역에 소재지를 두고 있는 외국 법인이나 비거주자가 국내에서 이자·배당·사용료 소득을 올리거나 주식매각 차익을 얻으면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라부안 소재 펀드의 경우 유상감자도 ‘의제 배당’에 해당돼 과세 대상이 된다”면서 “하지만 그 밖의 지역은 해당국가와 맺은 조약에 따라 세금부과 여부가 결정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당국도 이를 규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 투기자금이라 하더라도 감독당국의 기준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규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배당과 유상감자 등은 주총 승인사항이며 감자는 최저자본금 기준을, 배당은 배당가능 이익범위의 기준에 맞춰 이뤄진다면 현실적으로 규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계 자본의‘먹튀’(먹고 튄다) 논란이 일면서 배당성향과 유상감자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펀드 특성상 인수한 회사의 회생이나 기업가치 제고보다는 투자금 회수에 초점이 맞춰지게 마련”이라며 “유상감자나 고배당으로 무리한 자금유출이 이뤄질 경우 기업의 존속이 어렵고 종업원의 고용 기반이 흔들릴 수 있어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kmh@fnnews.com 김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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