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까지 이 대회 명칭은 그레이터밀워키오픈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타이거 우즈(미국)가 프로로서 첫 티샷을 날린 대회이기도 하다.
우즈가 데뷔 10년을 맞았다. ‘골프신동’은 이제 ‘골프황제’가 됐다.
자신의 프로 데뷔전이 이번 주에 열리지만 아쉽게도 주인공인 ‘서른 살의 호랑이’는 불참한다.
그렇지만 그의 데뷔 10년을 맞아 우즈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본다.
■10년 전 우즈
“헬로우 월드(Hello, World).”
우즈가 프로 데뷔 기자회견장에서 첫 번째로 내뱉은 말이다.
물론 계약사 나이키의 철저한 마케팅 전략에서 나온 멘트다.
1996년 우즈는 각종 아마추어 대회를 휩쓸고 있었다.
US아마추어챔피언십을 3회 연속 제패한 우즈는 우승 이틀 후 프로 선언을 한다.
데뷔전이 조용할 리 없었다.
수많은 취재진을 비롯해 수천명의 갤러리가 우즈의 모습을 보기 위해 대회장을 찾았다.
우즈는 자신의 첫 데뷔전을 자축하듯이 최종 라운드에서는 홀인원을 기록했다.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공동 60위, 상금은 2544달러였다.
그러나 우즈의 진가는 금세 드러났다.
다음 대회에서 11위를 차지한 우즈는 그 다음에 5위와 3위를 차지하더니 급기야 5번째 대회만에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2주 후에 또다시 우승컵을 추가했다.
고작 8개 대회에 출전하고도 상금 랭킹 25위에 오른 그는 그해 신인왕을 비롯해 각종 상을 휩쓸었다. ‘신동’은 점차 ‘황제’로 변모해 가고 있었다.
■2006년 우즈
지나온 10년 동안 우즈는 각종 골프 기록을 갈아치웠다.
96년 세계 랭킹 33위였던 우즈는 이번주까지 무려 401주 동안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동안 209개의 대회에 참가해 49승을 올렸고 상금으로만 무려 6003만4324달러를 챙겼다.
통산 상금 랭킹 2위를 달리고 있는 비제이 싱(피지·4810만6395달러)과는 약 1200만달러나 차이가 난다.
2000년과 2001년 시즌에는 4개의 메이저 대회를 차례로 제패해 ‘타이거 슬램’이라는 말을 새롭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우즈에게 큰 시련도 있었다. 스윙 교정을 하던 2004년에 단 1승 밖에 거두지 못한 것이다.
상금왕과 올해의 선수상도 싱에게 빼앗겼다. 하지만 그것은 철저하게 계획된 슬럼프였다.
스윙 교정을 마친 우즈는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져 있었다.
올해는 스승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아버지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 US오픈에서는 컷오프를 당했다.
우즈는 그러나 아버지 영전에 ‘클라렛 저그(브리티시오픈 우승 트로피)’를 바치며 ‘홀로서기’에 성공했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10년 후 우즈
우즈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잭 니클로스다. 그가 니클로스를 처음 만난 건 그의 나이 15세 때다.
이후 우즈의 침대 머리 맡에는 니클로스의 사진이 붙었다. 니클로스를 뛰어넘겠다는 각오였다.
현재 우즈는 마스터스 4승을 포함해 메이저 대회에서만 11승을 일궜다.
올해 30세인 우즈는 니클로스의 기록 달성 속도를 앞지른다.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메이저 대회 1승씩을 추가한다고 가정하면 40세에는 약 22승을 달성하게 된다.
더구나 골프 선수의 최전성기가 30대 중반인 점을 감안하면 우즈가 니클로스의 기록을 거뜬히 뛰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즈는 또 샘 스니드가 갖고 있는 PGA 최다승 기록(82승)에도 도전하고 있다.
이 역시 이변이 없는 한 우즈가 새로운 기록 보유자가 될 것으로 점쳐진다.
통산 상금 1억달러의 주인공도 우즈 몫이다.
아빠도 될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을 단순히 골프의 승리자가 아닌 ‘인생의 승리자’가 되도록 가르칠 것이다.
같은 흑인으로 ‘농구황제’로 군림했던 마이클 조던은 우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우즈가 신(神)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이 우즈를 세상에 보냈다고 믿는다.”
/freegolf@fnnews.com 김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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