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에게 시장은 조금의 배려도 없이 냉혹하다. 대기업은 시장이 초기단계를 벗어나 성장단계에 이르면 거침없이 중소기업이 갖고 있던 시장을 단번에 삼켜 버린다. 한때 MP3플레이어 최대 강자였던 레인콤도 대기업의 공세에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나 다국적 기업들이 진입하지 않거나 진입이 어려운 틈새시장에선 상황은 달라진다. 중소기업들도 독보적인 기술과 브랜드, 가격 경쟁력으로 단단히 무장한다면 그들만의 시장, 바로 틈새시장에서 글로벌 1위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대기업 물렀거라” 틈새전략의 힘
매출 69억원 하던 벤처기업 아이레보는 지난 2003년 거액을 들여 TV광고를 했다. 당시로선 ‘모험’이었다. 광고비에 쏟아부은 돈은 매출의 30%가 넘었다. 광고가 나간 후 아이레보의 디지털도어록 ‘게이트맨’은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덩달아 디지털도어록시장도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해 아이레보 매출도 5배가량 뛰어올랐다.
아이레보는 TV홈쇼핑 판매망도 뚫었다. 당시 아이레보는 “1등 홈쇼핑에선 1등제품을 팔아야 하지 않겠냐”며 시장조사 자료를 대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홈쇼핑계열 대기업이 만들던 도어록을 보기 좋게 이겼다. 이런 와중에 도어록시장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은 철수했다. 대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기가 만만치 않았던 것.
하재홍 사장은 성공요인을 이렇게 말한다. “첫째는 조직력, 둘째 서비스, 셋째 입소문이다.” 디지털도어록이 하나의 ‘블루오션(신규시장)’으로 커가면서 아이레보의 브랜드 파워는 최고의 경쟁력이 된 것이다.
기업용 개인휴대단말기(PDA)를 8년째 만들고 있는 블루버드소프트. 이 회사 이장원 사장은 기업용 PDA시장을 ‘계륵’에 비유한다. “요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계륵’의 맛이 달라지지요. 천차만별인 손님들의 입맛에 맡도록 ‘맛있게’ 만드는 것이 시장에서 살아남는 비결입니다.”
블루버드소프트는 백화점 등에서 쓰는 유통업체 전용 PDA시장의 95%를 점유하고 있다. 이 회사의 생존비결은 철저한 ‘맞춤형 다품종 소량생산’ 바로 틈새전략이다. 많게는 몇만 대부터 적게는 몇 십 대까지 맞춤형으로 공급하다 보니 대기업이 선뜻 손대는 게 어렵다는 것.
■브랜드, 기술력으로 ‘세계표준’
쓰리세븐은 손톱깎이 하나만은 세계적인 브랜드다. 한 해에 8000만개의 손톱깎이를 생산한다. 92개국에 수출해 전세계 인구의 절반인 30억명이 쓰고 있다. 30년 축적된 기술이 바로 쓰리세븐의 첫번째 경쟁력. 수백만번의 반복 동작에도 탄성을 잃지 않고 항상 아래위 날이 정확히 맞물리도록 정교한 기술로 인정받는다. 이 같은 기술력과 함께 쓰리세븐의 브랜드 사수 전략은 글로벌 틈새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잡지 못하는 1위 자리를 지켜내는 성공요인.
쓰리세븐은 지난 95년엔 보잉사와 ‘777’을 둘러싼 상표권 분쟁에서 승리했다. 또 5년전 중국에서 팔리는 쓰리세븐의 불법 복제품을 모조리 사들여 용광로에 쏟아부은 일화는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수리 상표(이글세이프스)가 달린 금고는 ‘메이드인 코리아’다. 선일금고는 매출의 80%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70여개국으로 수출하는 세계 3위 업체다. 미국의 최대 금고판매점에 가보면 독수리표 금고가 절반이 넘고 가장 비싸다. 선일금고가 세계 최고대우를 받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최초’와 ‘최고’의 품질. 불에 타지 않는 내화·내충격 금고를 처음으로 개발했다. 또 지금은 보편화된 외문형 금고, 디지털 잠금장치를 접목한 금고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이 제품들은 세계금고의 표준(글로벌 스탠더드)으로 통한다. 끊임없는 발상의 전환과 기술개발의 결과다.
■글로벌 틈새시장에서 명품대접
칫솔살균기를 만드는 에센시아도 세계시장 40%를 장악하고 있는 1위 기업.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단계 틈새시장. 이 시장이 만들어진 것도 에센시아가 지난 89년 세계최초로 자외선 칫솔살균기를 개발하면서부터다. 사업초기엔 1년 동안 100개도 못 팔 정도로 반응은 냉담했다. 에센시아는 끝까지 시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디자인을 세련되게, 크기를 작게 바꾸고 기술개발을 계속했다. 그리고 지난 8년간의 우여곡절끝에 각종 품질인증과 세계발명품대회 최고상을 받았다. TV 방송을 타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지금은 칫솔살균기는 국내에서 300만개 이상, 해외에서 100만개가 넘게 팔렸다. 해마다 4∼5가지의 신제품을 내놓으며 소비자들에게 파고든 결과다.
10여년 전부터 석유난로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중소기업 파세코. 이 회사는 석유난로(브랜드명 케로나)를 미국, 독일, 이라크 등 35개국에 수출, 세계시장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저가 제품으로 일교차가 큰 중동시장을 뚫고 미국 품질인증(UL)도 받으면서 글로벌 메이커로 자리를 굳혔다.
이 밖에 감시카메라인 보안용 영상녹화 장비(DVR) 세계 1위기업인 아이디스,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필립스 등 글로벌기업과 당당히 경쟁하는 유닉스전자의 헤어드라이어, 아토피화장품 ‘아토팜’으로 성공한 네오팜 등 많은 중소기업들이 지금도 글로벌 틈새시장에서 명품대접을 받고 있다.
/skjung@fnnews.com 정상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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