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민간의료보험의 허실/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

홍창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8.20 04:30

수정 2014.11.06 00:58



보험은 민간회사가 상품으로 판매하든 국가가 공공서비스로 제공하든 간에 ‘위험 분산’을 본질로 하는 사회적 재화다. 즉 질병에 걸렸거나 걸릴 위험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한데 모아서 개인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 위험을 함께 나누는 것이 의료보험의 기본 역할이다. 건강한 사람만을 선별적으로 가입시키는 의료보험이라면 더 이상 보험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민간의료보험은 보험의 기본 요건을 충족시키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병력자, 장애인, 노인 등과 같이 정작 의료보험이 필요한 사람들은 보험 가입을 거절 당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또 이들을 가입시키는 경우 매우 높은 보험료를 매기거나 기존 질환을 보장항목에서 제외하고 있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구매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큰 문제다. 민간의료보험은 보험 상품 중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전문적인 축에 속한다. 의학 전문용어로 이뤄진 수많은 질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는 아무리 꼼꼼하게 뜯어봐도 자기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이 무엇인지를 알 도리가 없다. 소비자의 합리적인 구매를 위해서는 민간의료보험 판매자의 적극적인 정보 제공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정보 부족을 오히려 매출 증대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예컨대 뇌졸중 전체를 보장하는 것처럼 광고하는 대부분의 상품이 전체 뇌졸중의 25%에 해당하는 뇌출혈만 보장한다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까. 온라인 판매 상품이 보험설계사가 판매하는 상품보다 보장 수준이 더 낮거나 가격이 더 비싼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또 얼마나 될까.

보험상품의 가격과 질에 대한 소비자의 정보 부족은 보험산업의 합리적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질과 가격 경쟁을 등한시하고 마케팅을 통한 매출 증대에 치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경쟁을 통한 소비자 편익 증대라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가 작동하지 않게 된다.

현행 민간의료보험은 질병에 따른 국민의 경제 부담을 경감시키는 역할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 암 환자의 비용 지출을 분석한 국립암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과 질병에 따른 소득 손실이 전체 경제적 부담의 8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간의료보험 상품은 이들 영역을 보장 영역에서 빼거나 부분만 보장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건강보험 적용 의료서비스의 불필요한 이용을 부추기면서 국민건강보험의 재정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민간의료보험은 정부 정책의 공백으로 존재했다. 물론 금융당국으로부터 보험상품 일반에 적용되는 관리감독을 받기는 했지만 질병과 건강을 다루는 사회적 재화로서의 관리감독은 사실상 전무했다. 의학적·보건정책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숱한 사안들이 제기됐는데도 금융당국은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된 민간의료보험 관리감독 부처 이전은 적극 검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서구 선진국들의 경우에도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의 전부 혹은 일부를 보건당국이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보험업계는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최근의 논의를 ‘과도한 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규제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민간의료보험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여부다.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응당 민간의료보험이 더욱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문제점을 바로잡는 게 우선이다. 보험업계는 지금 모습 그대로 방치해 달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문제 지적이 날로 늘어나는 이유를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과정이 선행되지 않은 반발은 설득력도 없고 국민의 공감도 얻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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