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나무 같지만 진짜 나무와는 다르죠. 실상을 통해 허상을 재창조했다고나 할까요. 현대미술작품에서 사라져버린 소재일지 모르지만 일상의 주위에 있는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그릴 수 없을까 고민했죠. 제 작품의 나무는 창조된 이미지이기 때문에 실제의 나무와는 다릅니다.”
서양화가 주태석(52·홍익대 미대 교수)은 ‘나무 작가’로 유명하다. 숲속을 거닐어 본 적이 있다면 한번쯤 보고 느꼈을 ‘초록의 나무’ 그림이다. 숲속의 그늘에서 햇빛 쏟아지는 저편의 모습, 빛과 그림자가 확연한 그의 나무그림에서는 ‘피톤치드’가 나오는 것 같다. 바람의 색을 코로 느끼며 싱그러운 청량감마저 감돌아 몸과 마음이 활짝 열린다.
커다란 나무 둥치와 그림자 효과, 단순화와 세밀한 묘사, 간결한 붓터치가 돋보이는 그의 작품은 서정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이미지이전 그의 작품은 기찻길 연작이었다. 사진같은 극사실주의 작품이다. 70년대 그의 그림 전시회에서 ‘사진이냐, 그림이냐’며 내기를 할 정도로 헛갈리는 그림이다.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때부터다. 미술대회에서 상을 휩쓸고 ‘미술 신동’이란 소리를 들었던 그는 지방(대구)에서 꿈에 그리던 홍익대학교에 입학했지만, 대학 진학 이후 겉돌기 시작했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동기들이 많았고 당시 추상미술이 유행하면서 교수들조차 사실적인 묘사를 하는 그의 작품에 대해 석연찮게 여겼기 때문. 그런데 4학년때 대학미전에 ‘기찻길’을 출품해서 대통령상을 받고 달라졌다. 상을 받으면 화가의 길로 가고 아니면 디자인계열로 진로를 바꾸려 했을 정도로 혼란의 시기였다. “당시 추상미술에서 하이퍼리얼리즘 화풍으로 옮겨가는 때여서 운이 좋았다”며 상을 받은 후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의 재능은 드디어 싹이 트기 시작했다. 전시회마다 주목을 받았고 화랑가에서 인기작가로 손꼽혔다.
80년대부터 이어지는 ‘나무’시리즈에서 작가는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걸까.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나무와 고르게 뿌려지는 스프레이 작업으로 그림자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빛을 그리는 것이죠. 빛의 개념을 통해 그림자로 두드러진 허상을 더 실제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그 속에 담긴 ‘나무’라는 소재가 주는 정적·고요·평안이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했습니다. ”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 자신 내부의 어떤 중요한 곳, 고요하고 슬픈 곳, 진지하고 진정한 곳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준다. 지난 5월 서울 삼청동 갤러리 인에서 스물여덟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각종 기획전에 참가하고 있다. 작품가격은 호당 30만원선으로 40호가 1200만원선에서 거래된다.
/hyun@fnnews.com 박현주기자
■주태석 서양화가 약력 △대구 △52세 △홍익대학교 미술대학·동 대학원 △개인전 28회·300여회 그룹전 △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학생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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