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32평형 아파트를 갖고 있던 은행원 박모씨(30). 최근 이 집을 팔고 강동구 명일동의 비슷한 평형아파트를 구입했다. 강남으로 가고 싶었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워 차선책으로 강동구를 선택했다. 아파트값 5억7000만원은 기존 집을 판 2억8000만원에 대출 3억원을 받아 마련했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옐로칩 아파트’ 매입이 늘고 있다. 중가 아파트들이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강화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보니 반사이익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강남·분당 등지 고가 대형아파트보다 부담이 적은 3억∼6억원 하는 30평형대가 옐로칩에 해당된다.
반면 그동안 가격 상승을 주도하던 ‘블루칩’(강남·분당 등 6억원 이상 대형아파트)는 각종 규제로 매매가 꽁꽁 얼어붙었다.
■옐로칩 아파트 메리트 부각
6일 업계에 따르면 옐로칩에 대한 매수문의가 크게 늘면서 매매도 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관망세가 짙었으나 가을 성수기로 들어서면서 실속형 매물 중심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들 단지는 1억∼2억원대 저가 아파트보다 가격 상승 가능성이 크고 강남 대형보다는 가격부담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유엔알 박상언 사장은 “휴가철이 끝나면서 그동안 실종되다시피 했던 매입 문의가 급속히 살아나고 있다”면서 “대부분 실거주를 목적으로 6억원 이하 30평형대 물건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시장을 주도했던 고가 아파트 대신 중간가격대 아파트들이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모씨(31)는 최근 관악구 신림동 ‘관악산휴먼시아’ 31평형을 구입했다. 이씨는 “부모한테 빌린 돈과 대출 등을 합쳐 3억5000만원에 구입했다”면서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가격도 오르고 있어 재테크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광진구 구의동 학사공인 관계자는 “9월 들어 매수 문의가 서서히 늘고 있다. 대부분 30평형대를 찾고 있다”며 “50평형대를 생각했던 손님들도 대출규제를 감안, 30평형대를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블루칩 단지는 여전히 한겨울
하지만 강남 등 고가 블루칩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는 지금도 여전하다. 찾는 사람이 없는데도 매물만 계속 늘어 적체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블루칩 아파트를 내놓은 다주택자들의 속이 편치 않은 것은 당연한 일.
집을 두 채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 임원 정모씨(56)는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 68평형을 30억원에 내놨다. 급격히 늘 보유세와 시장상황을 감안, 올해 안에 파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언제 팔릴지 기약이 없는 형편이다.
그는 “그동안 매수 문의는 한 차례도 없었다”면서 “업소에 물어보니 큰 집을 갖고 있어 봐야 예전처럼 메리트가 크지 않아 찾는 사람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고 말했다.
강남 도곡동 W공인 관계자는 “매물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아직 매수세는 전혀 없다”며 “근래 들어 도곡렉슬 26평형 급매물이 하나 거래됐을 뿐 대형은 문의가 끊어졌다”고 설명했다.
분당 정자동 K부동산측은 “20억원 하던 파크뷰 54평형이 18억원에 나왔지만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며 “매물이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매수세는 관망만 하고 있다”고 밝혔다.
/steel@fnnews.com 정영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