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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영의 그림으로 배우는 자기 계발 전략] 앙리 루소의 ‘꿈’

박현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06.09.07 16:36

수정 2014.11.05 12:36



※‘늦깎이 화가’의 몽환적 세계 현대미술 흔들다

담을 넘는 것은 ‘월장’이고, 경계를 넘는 것은 ‘월경’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는다는 의미에서 이 말들은 혈연관계에 있다. 넘고 싶다고 해서 무작정 담을 넘고 경계를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전하게 넘어서기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삶에서 시도하는 월장과 월경도 다를 바 없다. 준비는 철저해야 한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정기간 낯선 세계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직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밥벌이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가 뒤늦게 다른 삶을 꿈꾼다면 준비과정은 필수다. 물론 오랜 시간을 들여, 작정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취미가 발전하여 다른 삶으로 월경하는 경우는 어떤가. 마치 견본제품을 사용해보고 본제품을 구매하는 것처럼 취미는 낯선 삶의 방식과 자연스럽게 맺어준다. 취미는 견본제품 같은 것이다. 지금 이곳에 몸담고 있으면서 다른 세계를 맛보고 즐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소박파’를 대표하는 앙리 루소(1844∼1919)는 취미로 그림을 시작해서 세계적인 화가로 우뚝 선 대표적인 경우다.

■하급 공무원에서 세계적인 화가로

‘르 두아니에(세관 관리) 루소’라는 별명이 말해주듯이 루소는 세관원이었다. 파리에서 하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1871년 파리 세관의 세금징수원으로 취직한다. 1893년에 퇴직할 때까지 무려 22년 동안 세관에서 근무했다.

루소가 본격적으로 붓을 든 것은 1884년 마흔 살 때였다. 이때 루브르박물관에서 유명한 그림들을 베껴 그릴 수 있는 모사 허가증을 받는다. 그는 직장과 가정 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서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그림을 그렸다. ‘일요화가’로서, 모든 여가시간을 그림 그리는데 쏟아 부었다. 그의 마음 한켠에는 아카데미 회원 같은 뛰어난 화가가 되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초보자 티를 겨우 벗을 무렵인 1885년, 꿈에 그리던 ‘살롱’전에 처녀 출품한다. 하지만 낙선. ‘아카데미’의 후신 격인 살롱전에서는 루소와 같은 천진난만한 스타일의 그림은 인정하지 않았다. 실망한 그는 살롱전에 대한 마음을 접는다.

이듬해인 1886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한다. 살롱전의 고답적인 스타일에 반기를 든 젊은 화가들이 창설한 앙데팡당전은, 루소가 새로운 그림들을 선보이는 단골 무대였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담했다. 7년 동안 20점의 작품을 출품했지만 비평가들은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나는 그의 그림을 조롱하거나 무시했다. 그렇지만 쉽게 좌절할 루소가 아니었다. 자기가 좋아서 시작한 그림인 만큼 화가로서의 자부심은 시들지 않았다.

1893년, 그는 그림에만 전념하기 위해 세관을 그만둔다. 전업작가가 된 것이다. 정규미술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생계에 보태고자 집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그렇지만 궁핍한 생활의 주름은 좀체 펴지질 않았다. 그런 가운데 1905년 뜻밖의 소식이 날아든다. 예전에 낙선의 고배를 마셨던 가을 살롱전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마침내 비평가들도 그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유명한 화상도 그의 그림을 구입해갔다.

■서툰 듯한 매력의 이국적인 신비

루소는 시대적인 흐름과 무관한 작품세계를 펼쳤다. 현실과 형이상학적인 구별이 무의미한 이색적인 세계였다.

대표작의 하나인 ‘꿈’(1910)에도 두 세계는 공존한다. 원시림 속에 나체의 여인이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땅꾼의 피리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주변에 사자와 코끼리가 있는 환상적인 장면이다.

이 그림은 어느 날 루소가 친구의 방에서 본 빨간 의자가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의자를 본 순간 젊은 시절 사랑했던 한 폴란드 아가씨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녀의 이미지를 그림으로 옮겼다. 화면 가운데에 멕시코풍의 식물을 빼곡히 그려 넣고, 아름다운 새와 꽃, 과일도 배치했다. 또 수풀 사이에 사자와 코끼리도 더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단 한 번도 멕시코에 가본 적이 없었다. 모두가 파리의 식물원에서 본 식물들을 조합하여 이국풍으로 그린 것이다.

루소는 이처럼 말년에 이국적인 풍경을 그렸다. 생경한 식물들이 무성한 가운데 식물들의 세부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추상적인 무늬를 그리듯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잎사귀를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렸다. 그것이 신비로운 새들과 동물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마추어가 그린 듯한 치졸하고 단순화된 형태와 기묘한 원근감, 이질적인 색상 대비 등이 오히려 신선한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공무원에서 화가로, 루소는 그림을 독학했다. 그것이 오히려 독창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미술교육을 받은 화가들이 유사한 스타일로 세련되게 그리는 데 비해, 루소는 레고 장난감을 조합하듯이 서툴게 그렸다. 그 결과, 개성이 생명인 예술세계에서 우뚝한 승자가 될 수 있었다.

/artmin21@hanmail.net
■‘키워드’

세상은 준비하는 사람의 것이다.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꾼다면 계획을 세워서 조금씩 준비할 일이다. 비록 낯선 분야일지언정 의지만 확고하다면, 자주 접하는 가운데 자신감도 생기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도 얻게 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삶의 CEO다.

도판설명)

1) 앙리 루소, ‘꿈’, 캔버스에 유채, 298.5×204.5 ㎝, 1910,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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